[매경데스크] 혁신이라는 착각
불과 10여 년 전 일이다. 늦은 시간 사람들은 서울 종로 거리에서 1차로까지 내려서서 '따블' '따따블'을 외치며 택시를 잡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카카오T의 혁신은 놀랍다. 스마트폰 탭 몇 번이면 금세 택시가 내 앞으로 온다.
외식 한 번이 힘들었던 코로나19 시절, 배달의민족의 음식 배달은 가족의 소소한 행복을 지켜줬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혁신의 달콤한 성과물인 줄 알았다.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우리가 단꿈에 젖은 사이 혁신은 서서히 독점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독점은 탐욕을 좇기 시작했다.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자 카카오T는 은근슬쩍 수수료를 올렸다. 택시 기사들에게서 수수료를 부당 징수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카카오T 가맹택시에만 콜을 몰아준 정황도 나왔다. 경쟁사와 제휴 계약을 맺으면서 실시간 운행 정보 같은 영업 비밀을 요구했다. 타다·반반·마카롱택시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했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사실상 사업을 철수했다. 거절하면 일반 호출 자체를 끊었다. 우티 기사 1만1561명이 피해를 봤다. 현재 카카오T의 일반 호출 시장 점유율은 96%다. 가맹택시 점유율도 2년 전에 이미 79%였다. 다음 수순은 안 봐도 뻔하다. 수수료를 더 올릴 것이다. 카카오T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택시 기사 수입은 더 줄어들고, 승객 주머니는 더 얇아질 것이다.
배달 앱 배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실태는 비슷하다. 배민의 현재 시장 점유율은 63%다. 시장 지배력이 커지자 중개 수수료를 올렸다. 입점 업체 수수료를 올렸고, 포장 수수료를 새로 만들었다. 배달팁 멤버십 '배민클럽'은 유료화했다. 앱에서는 배민배달을 앞쪽에 배치하고 가게배달은 눈에 잘 안 띄게 해놓았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민은 이미 지난해 7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제발 배민 망하게 해주세요'라는 자영업자의 절규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급기야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배민을 신고하기로 했다.
혁신이라는 환상에 취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독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됐다. 거대 플랫폼의 독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의 혁신을 방해한다는 주장에 묻혔다. 이들 플랫폼이 서비스 출범 초기 잠시 가격을 낮춰 가맹자와 소비자들을 유혹했던 적이 있었다. 혁신에 성공해 소비자 후생이 늘어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경쟁자들을 배제하고 진입장벽을 높여 독점으로 가기 위한 '일보후퇴'였다. 독점으로 가는 과정을 숨기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독점을 이룬 기업들은 어김없이 탐욕을 드러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독점은 탐욕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개구리 등에 타고 강을 건너던 전갈이 같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개구리를 독침으로 찌르는 장면이 나오는 프랑스 우화가 있다. 그때 전갈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긴다.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내 본능인걸." 독점은 그런 것이다.
공정위가 카카오T에 724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카카오그룹에 부과된 역대 최다액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독점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털렸고,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은 노동의 제값을 받지 못했으며, 경쟁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공정위가 가져간 과징금은 또 다른 독점을 막는 데 쓰일 뿐 이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보상받을 길은 없다.
그나마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이 다행이다. 독점이 낳은 탐욕을 제재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독점으로 가는 길목을 정부가 눈 부릅뜨고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이제 생겼다.
[이진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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