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감수하는 게 예술의 역할"…연극 '애도의 방식' 신진호 연출가
연극 ‘애도의 방식’ 신진호 연출
여백 많은 인물과 상황 제시해
폭력과 정의에 대한 질문 던져
2023 이효석문학상 대상 받은
안보윤 작가의 연작 소설 각색
“타인에 대한 관심이 창작 동력”
여백 많은 인물과 상황 제시해
폭력과 정의에 대한 질문 던져
2023 이효석문학상 대상 받은
안보윤 작가의 연작 소설 각색
“타인에 대한 관심이 창작 동력”
한 고등학생(승규)이 폐건물에서 추락해 죽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사고 당일까지 죽은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동주)다. 자식을 잃고 삶의 의미가 사라진 엄마(미정)가 피해자 학생을 찾아가 묻는다. 그날 사고 현장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단 한 번만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폭력과 2차가해, 악을 조장하는 사회 구조 등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연극 ‘애도의 방식’이 공연 중이다.
소년범(‘카르타고’), 보호종결아동(‘소년대로’) 등 소외된 청소년 문제를 다뤄온 신진호 연출가(33)가 역시 사회 참여적 소설을 써온 안보윤 작가의 연작 소설 ‘애도의 방식’(2023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완전한 사과’ ‘딱 한번’을 각색한 연극 ‘애도의 방식’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 ‘애도의 방식’에서 신 연출가가 중점을 둔 것은 여백이다. ‘애도의 방식’은 서사의 중심인 학교폭력 가해자 승규의 죽음과 그것에 대한 피해자 동주의 태도를 모호하게 제시한다. 어둡고 불편한 내용을 맞닥뜨리는 관객이 연극의 흐릿한 결말을 스스로 채우면서 폭력과 단죄, 악의 본질을 사유할 것을 의도한다.
신 연출가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소설 ‘애도의 방식’에서 동주가 승규의 죽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것을 보고 그 여백을 무대에서 연극적 방식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여백이 많은 인물을 무대에서 구현하고 관객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빈 부분을 메꾸는 것을 의도했다”고 말했다.
‘애도의 방식’은 가해자와 피해자, 2차가해와 단죄 등 구분이 분명해보이는 것들에 숨은 여백도 조명한다. 정의감에 취해 범죄자의 가족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 타인의 불행을 부풀리고 가십 거리로 소비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이웃들, 어린 가해자가 가정과 사회에서 방치되며 악을 행하게 되는 과정 등을 보여준다.
신 연출가는 “인간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면 섣불리 판단하거나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며 “관객이 다소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삶에 대한 시선과 윤리적 잣대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그것이 문학과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 연출가는 여백이 사유를 촉발한다고 강조했다. 감정과 이념, 자극적 감각으로 가득 찬 콘텐츠는 관객에게 자신과 세계를 돌아볼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프로덕션에서도 가장 고민했던 것은 슬퍼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였다”며 “아들 승규를 잃은 미정이 아들의 지난 삶을 추적하게 해 관객이 슬픈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폭력과 악에 대한 사유를 하게 유도했다”고 말했다.
신 연출가가 사회 참여적 연극을 연출하는 이유는 타인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무관심이나 무지로 타인의 삶을 외면하거나 함부로 재단한 것을 깨달을 때 미안함을 느낀다고 그는 밝혔다.
그는 “어린 시절에 가족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외면하려 했던 때가 있었고 어른이 된 후 그것에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며 “그로 인해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고 세상을 더 사랑하려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과 관계 없는 삶을 살았던 신 연출가는 20대 초반 서울 산울림극장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뒤 연극에 빠졌다. 배달 라이더, 호프집 서버, 건설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프로젝트박스 시야 등 극장에서 일하다 2018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연극 ‘종이인간’을 무대에 올리며 연출가로 데뷔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신 연출가는 “극장이라는 사각의 어둠 속에서는 다양한 삶이 발생한다”며 “타인의 삶과 마주하고 생각지 못한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연극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원작자인 안보윤 소설가는 연극 ‘애도의 방식’을 관람한 뒤 소설과 다른 색다른 감동을 느꼈다고 밝혔다. 안 소설가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에서 언어로 풀었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감각적 실제로 나타나 다채로운 울림을 느꼈다”며 “묵직하고 불편한 주제를 다뤄온 만큼 독자들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같은 세계를 천착하는 예술가를 만나 동료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고 말했다.
연극 ‘애도의 방식’은 40세 이하의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의 지원으로 제작됐다.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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