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커머스, 판매대금 20일 내 주고 50%는 은행에 넣어야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책 마련
일러스트=박상훈
9일 정치권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이런 내용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사실상 확정하고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티메프 사태 이후 소비자와 판매자, 플랫폼 등 각계 의견을 종합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왔다. 그 결과물이 2개월여 만에 나온 것이다. 이는 쿠팡·네이버·11번가·지마켓 등 상품 중개 플랫폼은 물론, 배달의민족이나 야놀자 등 배달·숙박 서비스 중개 플랫폼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그래픽=박상훈
티메프 사태는 중개 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자들에게 줘야 할 여행 상품, 상품권 등의 판매 대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다가 자금이 경색돼 발생한 ‘이커머스계의 대참사’였다. 피해 판매업체가 4만8124곳에 달하고, 미정산 규모는 1조2789억원이었다. 1억원 넘게 돈을 못 받은 업체도 981곳이나 됐다. 검찰은 이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에게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다.
이번 개선안의 핵심은 중개 플랫폼이 상품 구매 확정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입점 업체들에 물품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개 업자에게 대금 정산 기한을 의무화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현행법상 상품을 직접 매입해 파는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들은 납품 업체에 40~60일 이내에 대금을 정산해줘야 한다. 대형 마트들이 정산을 미루며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하지만 티몬·위메프 같은 ‘판매 중개업자’들은 이런 규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티몬 등이 기한을 최장 60일 이상으로 운영하며 미정산 대금을 기업 인수 등 다른 목적에 활용한 것이 티메프 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됐다.
앞으로는 이런 ‘자금 유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중개 플랫폼에도 정산 기한을 두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판매 시장이 커져 대규모 중개 플랫폼들도 대형 마트 못지않게 정산 주기를 두고 갑질을 할 우려가 있다”이라며 “이 같은 인식이 반영된 개선책”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다만 숙박이나 여행 등 일부 서비스 중개 플랫폼에 대해서는 정산 기한을 구매 확정일이 아니라 ‘서비스 시작일로부터 5일’로 다르게 정하기로 했다. 구매 시점과 실제 서비스 제공 시점이 크게 차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3개월 뒤 숙박을 오늘 예약·결제하는 식이다. 실제 숙박이 시작되기 전에 환불 등 변동 가능성이 큰 특성을 반영했다. 정산 기산점이 뒤로 밀린 만큼, 기한은 5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플랫폼이 판매 대금의 50%를 별도 금융기관 등에 예치하는 에스크로(escrow)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역시 자금 유용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당초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금 100% 예치’ 안을 검토했으나, 중소 플랫폼의 경우 자금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업계의 반발로 한발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기관이 아닌 유통 업체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유동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반영됐다고 한다. 정산 기한과 에스크로는 강제 조항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과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고,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형사 고발 대상이 된다.
◇쿠팡·네이버·배민 등 주요 플랫폼 모두 적용
이 같은 대금 관리 규제는 ‘대규모 플랫폼’에 적용될 예정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를 ‘대규모’로 볼지를 두고 정부와 업계 간의 의견 차이가 막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중개 거래 수익(수수료 수익) 100억원 이상’이면 모두 적용하자는 입장인데, 업계는 이보다 완화된 ‘1000억원 이상’ 기준을 원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대상 플랫폼이 30~40개 정도지만, 후자는 20여 곳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쿠팡, 네이버, 배달의민족, 야놀자 등 주요 상품·서비스 중개 플랫폼은 모두 들어간다.
업계는 “정부 안은 너무 범위가 넓어 중소 플랫폼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입장이다. 이제 막 시작해 커나가는 플랫폼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 안을 채택할 경우, 이번 사태의 촉발점인 티몬과 위메프가 규제 대상에서 빠질 우려도 있다. 위메프의 작년 수수료 매출액이 1268억원이고, 티몬의 2022년 매출이 1205억원(작년은 감사인 의견 거절)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두 곳의 재무 상황이 악화돼 연매출 1000억원 이하가 되면, ‘티메프 재발 방지책’에 티메프가 빠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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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완 기자 so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