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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 안경 벗으면 첫 신호다…쿠팡 김범석 '분노 3단계'




유통 판 바꾼 로켓배송, 어떻게 나왔나

■ 경제+
누군가가 무심코 내뱉은 ‘합리적 가격’이라는 단어에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직원은 예상했다. 늘 그래왔듯 그가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라고 치고 나온다는 것을.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왜 합리적 가격이죠? 가격이 제일 싸다면 그건 합리적 가격이 아니라 최저가죠. 최저가라 부르는 게 맞아요.”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과 함께 일했던 전직 임원이 4~5년 전쯤 회의에서 경험한 일이다. 김범석 의장은 용어 하나도 논리를 따져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렸다. 논리적이지 않은 말 한마디가 결국 비논리적 접근으로 이어져 일을 그르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쿠팡의 성장을 이끈 비결은 무엇일까. 쿠팡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제적 인물’ 김범석의 리더십에서 그 답을 찾았다. 문제가 생기면 논리적으로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김범석의 스타일은 쿠팡의 조직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김범석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할 때도 재거나 고민하며 시간을 끄는 방식은 쿠팡에선 용납되지 않는다. 주문 다음 날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로켓배송부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 배달 플랫폼 쿠팡이츠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짧은 기간 동안 계속해서 쏟아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범석과 일하는 게 너무 안 맞고 힘들어 퇴사했다”는 한 전직 임원은 “김범석의 유별난 리더십이 쿠팡을 성장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범석은 돌려 말하거나 듣기 좋게 포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투수로 치면 변화구는 없고 직구만 있다”고 평가했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계 미국인(미국명 Bom Kim, 범킴)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때 대기업 해외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나간 이후 줄곧 미국에서 자랐다.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비즈니스스쿨(MBA)을 다니다 중퇴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쿠팡을 창업했다. 서울대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한 적이 있고, 방학 때 한국을 찾긴 했지만 그는 분명 미국인이다. 한국인 친구보다는 미국인 친구가 편했으며, 한국어는 곧잘 했지만 영어가 더 익숙했다.

김범석 의장의 성장 배경으로 인해 그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여느 한국 기업인과는 다르며, 이런 사고방식이 쿠팡의 조직문화 전반에 뿌리내렸다는 것이 쿠팡 직원의 이야기다. 쿠팡 내 독립적인 사업 조직 리더를 일컫는 PO(프로젝트 오너) 출신인 문석현 데이터경영연구소장은 저서『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에서 “쿠팡 내부를 들여다보면, 특히나 문화나 가치관에서 군데군데 미국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적었다. 그는 “그들(미국 동료)은 회사에서 일할 때도 항상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그들이 말하는 ‘correct’ 즉 ‘올바르다’는 표현은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 곧 올바름의 동의어가 되는 조직. 김범석 의장이 쿠팡을 이끌어 온 방식이기도 하다. 쿠팡의 전·현 직원은 ‘고집이 세고 자신감이 넘치는 김범석 의장은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독재자라고 보긴 어려웠다’고 평가한다. ‘누구나 오너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업무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는 쿠팡 특유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문화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현재 고객 서비스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은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회의를 소집할 권한이 있다. 막내 직원이 소집한 회의가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임원도 참석한다”고 말했다.

한국식 기업문화에 익숙한 직원 중 일부는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효율적인 게 무조건 옳은가라는 문제의식이다. 국내 대기업 출신으로 2015년부터 2년간 쿠팡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쿠팡의 문화는 아마존과도 굉장히 닮았다. 두 회사 모두 물류센터와 배송의 ‘효율’을 중시하는데, 이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는 사람인 동시에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면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위로와 애도를 표시하는 일보다는 시스템 오류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느낌도 받았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범석 의장은 ‘분노왕’이라 할 만큼 가끔 불같이 화를 냈다. 오죽하면 직원들 사이에 ‘범킴의 분노 3단계’라는 우스개가 있다. 회의 중 그가 불만을 표시하는 방법인데, 불만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3단계로 표현한다. ① 안경을 벗는다 ② 머리를 쓸어올린다 ③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나간다. 그는 주로 사업이 장애물에 가로막힐 때 분노했다. 동시에 분노의 근원을 어떻게든 빠르게 파악하고 해법을 찾아냈다. 그 해법이 효과적이며 적법하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택배 회사와의 소송이다. 쿠팡은 2014년 3월 주문 다음 날 물건을 받아보는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제3자 물류를 배송하려면 택배 면허가 필요했다. 면허가 없는 쿠팡의 선택은 직매입이었다. 면허가 없어 택배를 못한다니 그럼 물건을 직접 사서 우리 물건을 우리가 배송하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시도는 즉시 택배업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직매입한 물건을 영업용 화물차가 아닌 일반 트럭을 이용해 직접 고용한 쿠팡맨(현 쿠팡친구)이 배송하는 방식이 사실상 무허가 택배업이라는 주장이었다. 택배업계는 2016년 5월 쿠팡을 상대로 운송금지 소송을 냈다. 3년간 이어진 소송의 승자는 쿠팡이었다. 지난한 재판 중에도 김범석 의장은 물류센터를 계속 늘려 가며 로켓배송을 확대했다.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는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 쿠팡에 총 30억 달러(당시 평균환율 기준 3조3500억원)를 투자했는데, 쿠팡은 이 자금 대부분을 물류 인프라 구축에 썼다.

2023년 창사 후 첫 영업이익 흑자를 낸 쿠팡에 올해는 시련의 시간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이 자체 브랜드 상품(PB)이나 직매입 상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알고리즘과 소비자 리뷰를 조작했다면서 160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지난 8월 통보했다. 쿠팡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선 상태다.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를 언론에 발표한 6월 쿠팡은 잔뜩 날 선 입장을 냈다. 반박자료에서 “매년 수십조원을 들여 로켓배송 상품을 직접 구매해 빠르게 배송하고 무료 반품까지 보장해 왔다. 로켓배송 상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없다면 지금 같은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소비자의 막대한 불편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으며, 로켓배송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향을 내비친 셈이다.

차준홍 기자

쿠팡의 소통 방식은 생소했고, 업계는 경악했다. 익명을 원한 전직 고위 쿠팡 관계자는 “딱, 김범석 스타일의 표현과 문장”이라면서 “정부의 결정이 철저히 비논리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럴 경우 김범석은 절대로 수긍하지 못하며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는 식의 사과는 절대로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04~2015년까지 출연한 직업 오디션TV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의 최고 유행어는 ‘You’re fired(넌 해고야)’다. 매회 탈락자가 정해지면 트럼프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이 말을 외치고 프로그램이 끝난다. 능력 없는 사람은 가차 없이 내치는, 능력주의의 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이니 가능한 이야기 혹은 현실과 다른 TV쇼의 과장된 세계관일 수도 있다. 하지만 700여 명의 쿠팡 임원에게는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다.

김범석 의장은 쿠팡을 성장시키면서 인재를 무수히 영입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굴지의 IT 기업에서 외국인 임원을 불러들였다. ‘IT 인재의 블랙홀’로 불렸다. 쿠팡의 물류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는 이들의 능력이 총동원됐다.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내쳐졌다. ‘You’re fired’ 통보를 받은 임원이 한둘이 아니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최고위직도 예외가 없었다. 아마존 출신 프랑스인인 앙드레 폴 클레잉은 2017년 5월 물류 총괄부사장으로 쿠팡에 합류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으며, 역시 아마존 출신의 캐런 러비 인사 총괄부사장은 4개월 만에 짐을 쌌다. 쿠팡의 전직 임원은 “대체로 6개월 정도를 두고 보다가 성과가 없으면 자리를 뺀다”며 “퇴사할 때 비밀유지서약을 하는데, 업무상 기밀 사항 외에도 경우에 따라 ‘퇴사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식의 내용이 포함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짧은 시간 이토록 많은 돈을 쏟아붓고, 로켓성장한 기업은 없었습니다. 유통산업 판을 뒤집고, OTT와 스포츠 중계, 배달앱까지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었습니다. 창업자 김범석을 파헤치면 쿠팡의 성장비결이 보입니다. 또 그들의 과제는 무엇인지, 어디까지 성장할 지 미래를 분석했습니다. 인사이트를 얻어갈 숨겨진 이야기들을 공개합니다.

“범이 또 물류센터 출근했대?”…전국 70% 쿠세권 만든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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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 대군 이끌고 왔다…‘배달의민족’ 덮친 ‘쿠팡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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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심서현·이수정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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