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노동자들의 24시간 안식처 '부산 동래역' 금싸리기땅 9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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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에 사는 이아무개(58)씨는 날마다 오후 4시께 대리운전을 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술꾼들의 시간인 술시(저녁 7~9시)가 끝나면 경남 김해시 어방동 편의점에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대리운전 호출앱에서 알림이 울리면 부산 방면으로 가는 자동차를 잡는다.
집으로 돌아갈 때 이씨는 부산 동래역 근처에서 오랜 시간을 대기한다. 동래역에서 집인 김해로 들아가는 ‘대리운전 호출’을 기다리거나, 호출을 잡는데 실패할 경우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서다. 그는 “동래역 주변에 술집이 많아서 보통 대리기사 40~50명이 동래역 주차장 근처에서 쪼그리고 기다린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호출을 잡으려면 보통 1~6시간 걸린다. 폭염과 강추위가 닥치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길에서 시간을 보냈던 이씨는 얼마 전부터 동래역 근처 쉼터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이제 밤마다 길거리에서 쪼그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누워서 눈을 붙이기도 하고 인터넷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가 호출을 잡는다”고 말했다.
밤마다 이씨를 반기는 곳은 이동(플랫폼)노동자 쉼터다. 쉼터는 30㎡(9평) 규모지만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췄다. 냉·난방기·정수기와 10여명이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의자, 커피 자판기, 공기청정기, 와이파이 등이 있다. 사전 등록한 이동노동자라면 무료다.
이동노동자는 대리운전기사, 배달운전자(라이더), 방과후강사, 보험설계사, 프리랜서 등 업무 특성 때문에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종사자를 뜻한다. 특정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휴게실이 있지만 이동노동자는 대부분 휴식을 취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쉴 공간이 필요하다.
휴게공간이 없는 노동자를 배려하는 쉼터는 휴식기능에 더해 법률·건강·구직상담과 교육까지 가능한 지원(거점)센터와 휴식기능만 있는 간이쉼터가 있다. 지원센터는 다양한 기능이 강점이지만 예산이 많이 들고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연중 24시간 운영이 힘들다. 간이쉼터는 다양한 편의기능과 공간이 부족하지만 예산이 지원센터에 견줘 적고 설치에 걸리는 시간이 짧다.
동래역 이동노동자 쉼터는 간이쉼터다. 이동노동자들의 발인 지하철·버스 정류장이 몰려 있는 동래역과 가깝고 24시간 운영이 장점이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의 ‘플랫폼종사자 일터개선 지원 공모사업’에 부산시가 응모해 지원받은 국비 3400만원에 시비 3400만원을 보태 설치했다.
황국현 부산시 일자리노동과 주무관은 “비싼 임대료와 월세를 주지 않고 컨테이너 1대를 구매해서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국유지를 관리하는 동래구가 터를 무상 임대했기 때문에 위치는 좋으면서도 예산 부담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연간 8억원을 들여 상주 인력이 필요한 지원센터를 세곳을 두고 있다. 2019년 부산진구 서면지원센터에 이어 2022년 해운대·사상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서면지원센터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해운대·사상지원센터는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운영한다.
15일 저녁 서면지원센터에서 만난 김태웅(62)씨는 “나 같은 이동노동자가 쉴만한 곳이 없었는데 서면지원센터가 생겨서 너무 좋다. 이런 곳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정길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장은 “온라인 기반 대기업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동노동자들인데 정작 온라인 기반 대기업들은 이동노동자들의 복지에 관심이 없다. 이동노동자들이 더위와 추위, 비를 피하는 공간 마련에 온라인 기반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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