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에 지친 당신…오늘도 안녕하신가요 [스페셜리포트]
# 서울 광진구에 사는 직장인 김민지 씨(가명)는 최근 본인이 구독 중인 유료 멤버십을 싹 한번 정리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유튜브 프리미엄과 쿠팡 와우 가격이 오르면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참에 ‘구독 다이어트’에 나서기로 하고 멤버십 비용으로 한 달에 얼마나 내고 있는지 계산해봤다.
계산 결과는 충격적. 한 달에 10만원 가까운 돈을 구독 경제에 지불하고 있었다. 유튜브와 쿠팡에 더해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카카오 이모티콘 플러스,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서비스 4개, 여기에 독서 플랫폼 밀리의서재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을 구독 중이었다. 업무상 활용도가 높은 챗GPT 플러스를 포함하면 월 결제 요금이 10만원이 넘는다.
김 씨는 “구독 서비스를 각각 결제할 당시에는 모두 필요해 보였고 비싸다는 인식도 없었는데, 다 모아놓고 보니 적잖은 돈이 나가고 있어 놀랐다. 남편과 상의 후 둘 모두 가입했던 쿠팡 와우는 하나만 유지하고 OTT 서비스도 2개로 줄였다”며 “구독 서비스가 너무 많다 보니 뭘 어떻게 쓰고 있는지 관리 자체가 안 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구독 경제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올해 구독 경제 시장이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전체 거래액이 약 2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하지만 급속도로 성장한 구독 경제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도 적잖다. 너무 많은 유료 멤버십에 혜택을 잊고 지나칠 때가 많고, 가랑비에 옷 젖듯 비용 부담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구독 서비스가 잇따라 가격을 올리면서 ‘구독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교묘하게 가입을 유도해놓고 해지·환불을 어렵게 만든 ‘다크 패턴’도 전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구독 경제 성장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본격 부각되는 분위기다.
가랑비 옷 젖듯…구독 부담↑
1년에 50만원 구독하는 한국인
구독 경제는 한 달에 정해진 요금을 내면 그 이상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서비스로 주목받는다. ‘구독’이라는 키워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 렌털 서비스나 유료 멤버십 모두 구독이라는 이름 아래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이제는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OTT와 음원 스트리밍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 콘텐츠는 물론 이커머스, 음식 배달, 가전, 식음료, 청소·세탁 등 생활 서비스, 커피 전문점 등 업종 불문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급성장한 ‘온라인 플랫폼’이 너 나 할 것 없이 유료 멤버십을 도입하며 최근 구독 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독 경제가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고객 이탈 방지를 막는 ‘록인 효과’를 누릴 수 있고 매달 고정 매출이 안정적으로 발생한다. 지난해 쿠팡이 첫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한 배경에도 유료 멤버십인 ‘쿠팡 와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독을 하고 나면 가입자가 예전보다 소비를 늘리는 경향도 있다. 일단 비용을 냈으니, 혜택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비를 할 수록 이득일 것이라는 심리 때문이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멤버십 구독자는 비구독자보다 최소 2배, 최대 7배까지 더 소비를 한다. 자주 이용할수록 받을 수 있는 할인 혜택이 더 많도록 설계된 덕분”이라며 “단순 유료 멤버십 매출을 넘어, 자사 플랫폼 내 거래가 더 활성화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구독 서비스는 록인 효과로 기업에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해주는 모델”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역시 구독 경제를 적극 도입한 기업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피로감’이다. 모두가 구독 모델을 도입하면서 소비자가 가입하는 멤버십이 무분별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장은 이득으로 느껴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손해를 보는 일이 부지기수다. 혜택을 최대한 누리려 하다 보니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너무 많은 멤버십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어디에 가입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탓에, 돈을 내고는 있지만 정작 방치하는 서비스가 많다.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비용은 매월 자동 결제되는 반면, 서비스 이용 때마다 굳이 할인 혜택을 따져보지 않기 때문에 득실 계산이 어렵다.
예를 들어 특정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 구독을 시작했다 수개월간 접속조차 안 하는 OTT가 생겨날 수 있다. 과거에는 보고 싶은 몇몇 콘텐츠를 골라 구매하면 됐지만, 구독 경제 대중화로 전혀 관심도 없는 콘텐츠 비용까지 포함해 내게 됐다는 점 역시 불만을 키운다.
현재 정확히 얼마를 지출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글로벌 구독 번들링·결제 전문업체인 방고(Bango)가 최근 동아시아 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소비자는 매월 평균 구독 서비스 이용 금액으로 30달러(약 4만원)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50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국내 소비자는 평균 3.4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응답자 71%는 앱 하나로 모든 구독 서비스를 관리하고 싶다고 했고, 한곳에서 모든 구독 서비스를 관리할 수 없어서 불편하다는 지적도 전체 65%가 제기했다.
어느 정도 시장을 확보하고 나면 가격을 올려버리는 플랫폼 행태도 피로감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쿠팡은 지난 5월 와우 멤버십 가격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 올렸고, 티빙·유튜브·디즈니플러스 같은 OTT 역시 멤버십 가격을 22~42% 높였다.
새로 나온 구독 서비스도 워낙 많다. 기존에 배달비 무료 서비스를 지원하던 배달의민족은 올해 9월부터 월 3990원 ‘배민클럽’에 가입해야지만 배달비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전에는 공짜로 쓸 수 있던 서비스에 돈을 추가 지출하게 된 셈이다. 구독 서비스와 거리를 두던 스타벅스도 최근 월 9900원 유료 구독 서비스 ‘버디패스’를 선보였다. 오후 2시 이후 제조 음료 주문 시 30% 할인 쿠폰을 매일 1장씩 제공한다.
전호겸 센터장은 “구독료가 구독 기간에 정비례해 꼬박꼬박 금액이 지출되는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독 상품이 많아져서 가정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과점 또는 독점 기업이 구독 요금을 올리면 꼼짝없이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피로감이 더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피로감 1 너무 많은 구독 서비스
OTT만 8개…쇼핑·생활·가전 등 전방위
많아도 너무 많다. 구독 피로감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은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늘어난 유료 멤버십 개수다.
OTT 서비스 방고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포함한 구독형 비디오(84%)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집계됐고 음원 사이트(49%), 쇼핑 플랫폼(46%), 음식 배달(18%) 등이 뒤를 이었다.
국내 서비스를 제공 중인 OTT만 해도 8개다.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애플TV를 비롯해 티빙·웨이브·쿠팡플레이·시리즈온·왓챠 등이다. 중복되는 영상도 많지만, 저마다 플랫폼에서만 제공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탓에 3~4개씩 구독하는 이도 적잖다. 영상을 제외한 온라인 콘텐츠 구독도 많다. 멜론·지니뮤직·플로 등 음원 스트리밍, 밀리의서재와 윌라 같은 전자책 서비스, 퍼블리·롱블랙 등 분야별 콘텐츠 멤버십 가격도 월 1만원에 육박한다.
금융·증권가에서도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곳이 많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신한 쏠증권 앱에서 유료 투자 정보 구독 서비스인 ‘분석플러스’를 선보였다. 현재 테마와 관련된 지표를 분석해주는 ‘테마 분석’과 수급 정보를 한곳에 모아서 분석해주는 ‘종목 분석’으로 구성됐는데, 해당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 각각 월 5900원을 내야 한다. 유진투자증권도 구독형 투자 정보 서비스 ‘쏙쏙멤버십’을 월 3000원에, KB증권도 투자 정보 구독 서비스 ‘프라임클럽’을 월 1만원에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토스는 토스증권 등과 연계해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 캐시백, 토스페이 할인·적립 등 혜택을 주는 ‘토스프라임’을 월 5900원에 서비스한다.
쇼핑 멤버십도 한둘이 아니다. 쿠팡 와우(월 7890원), 네이버플러스(월 4900원),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연 3만원), 컬리멤버스(월 1900원), 11번가 우주패스(월 4900원) 등이 대표적이다. 개수가 많거니와, 저마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분야가 워낙 다양해, 소비자 입장에서 득실을 따지려면 머리를 싸매야 한다. 배민클럽(월 3990원), 요기패스X(월 2900원) 등 배달 플랫폼 멤버십도 생겨났다.
구독 경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오프라인 매장도 구독 열풍에 합류했다. 스타벅스는 지난 10월 1일 새 유료 구독 ‘버디패스’ 시범 운영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다. 월 9900원에 오후 2시 이후 음료를 30% 할인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최다 판매 품목인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할인폭(1350원)을 계산하면, 월 8잔 이상 마셔야 본전을 뽑는다. 하지만 오후 2시 이후라는 제한, 여기에 기존 신세계그룹 전체 유료 멤버십인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 주요 혜택 중 하나가 스타벅스 음료 쿠폰이라는 점에서 서로 고객을 잠식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 우려도 나온다. 커피빈코리아 역시 연회비 3만원 ‘오로라 멤버스’로 상시 10% 할인 혜택을 지난해부터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업계도 구독 경제에 뛰어들었다. 편의점 CU는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포켓CU에서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10여종 상품 카테고리 중 원하는 품목 월 구독료(1000~4000원)를 내면 정해진 횟수만큼 정기 할인을 받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월 2500원짜리 ‘포켓CU 간편 식사’ 구독 상품에 가입하면 삼각김밥·햄버거 등 제품을 월 25% 할인해준다. GS25도 도시락·샐러드 할인(월 3990원), 카페 제품 할인(월 2500원) 같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유료 멤버십이 넘쳐난다. 이모티콘을 무제한 쓸 수 있는 카카오 이모티콘 플러스(월 3900원), 세탁·수거 플랫폼 ‘세탁특공대(월 5900원)’를 비롯해 ‘런드리고’ 역시 최대 13만5000원짜리 월정액 상품을 마련해놨다. 최근에는 챗GPT를 비롯해 문서 편집·번역·이미지 생성·보도자료 작성 등 다양한 인공지능(AI) 서비스에서 유료 구독 모델을 도입하는 추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록인 효과로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탓에 어느 순간 너도나도 구독 모델을 도입했다”며 “소비 전략을 철저히 세우는 소비자라면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자주 쓰지도 않는 서비스에 멤버십 비용만 추가 지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피로감이 커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피로감 2 구독플레이션
유튜브, 한 번에 요금 42.5% ‘쑥’
가뜩이나 구독하는 서비스가 많은데, OTT를 중심으로 구독료를 올리고 있어 부담은 더욱 가중되는 중이다. 구독과 인플레이션 합성어인 ‘구독플레이션’이 신조어로 떠올랐을 정도다.
실제 구독료 부담이 한결 커졌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품목별로 살펴보면 OTT 등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 물가지수는 107.44로 2021년 9월(100.37) 이후 6.77포인트 올랐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를 조사하기 위해 458개 ‘대표 품목’을 대상으로 물가를 조사하는데, 이때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 가중치는 8이다. 국산 소고기(8.6)나 돼지고기(9.8) 가격과 비슷한 강도로 물가지수를 좌우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상폭은 훨씬 크다. 유튜브는 지난해 12월 기존 1만450원이던 ‘프리미엄 요금제’ 가격을 1만4900원으로 42.5% 인상했다. 유튜브가 구독료를 올린 것은 2020년 9월(8690원 → 1만450원) 이후 3년여 만이다.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도 9900원이던 구독료를 2년 만인 지난해 11월 40.4% 인상했다. 단일 요금제를 ‘스탠다드(9900원)’와 ‘프리미엄(1만3900원)’ 요금제로 개편하며 사실상 요금 인상에 나섰다. 넷플릭스는 가장 저렴한 요금제였던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를 없애고 광고를 보는 대신 가격을 낮춘 광고형 요금제(월 5500원)를 선보이기도 했다. 무광고 요금제 중 가장 저렴한 것은 스탠다드(월 1만3500원)다. 이전과 비교하면 4000원 오른 셈이다. 또 세대 외부에서 계정을 공유할 경우 기존 요금에 5000원을 추가하기도 했다.
국내 플랫폼도 예외는 아니다. 쿠팡은 올해 8월부터 유료 멤버십이던 ‘와우 회원’ 멤버십 구독료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1% 인상했다. 2021년 12월 이전에는 2900원이었으니, 3년도 안 돼 구독료가 2.5배 가까이 오른 모습이다.
스트리밍 플랫폼 ‘숲(옛 아프리카TV)’도 오는 11월부터 구독료를 올리기로 했다. 구독 모델을 티어1·2로 나눠 개편하고 기존 티어1 구독료를 월 3300원(PC·웹 기준)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새로 선보이는 티어2는 월 1만4500원으로 책정했다.
대다수 구독제 서비스가 2~3년에 한 번씩 요금을 올리고 있고 인상폭은 두 자릿수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비싸면 구독을 해지하면 그만”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플랫폼에 ‘록인’돼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쉽지만은 않다. 앞서 2021년 쿠팡이 구독료를 72% 올릴 당시에도 쿠팡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오히려 늘었다. 2021년 900만명이던 와우 멤버십 회원 수는 지난해 1400만명으로 급증했다. 쿠팡이 전국 단위 새벽배송을 운영하는 등 시장을 장악하면서 ‘쿠팡 없이 살 수 없는’ 소비자가 많아진 셈이다.
플랫폼마다 구독료를 인상하고 있지만 문제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 서비스에서 크게 개선된 것이 없는데 소비자 지출만 늘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다은 씨는 “OTT는 영상 시청 시간을 일부러 늘리지 않으면 본전도 못 건진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배달 앱 멤버십 역시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서 쓰고는 있지만,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면 멤버십을 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로감 3 ‘다크 패턴’에 구독당하다
모르는 새 구독…환불 절차 까다로워
구독 경제가 피곤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다크 패턴(Dark pattern)’ 때문이다. 다크 패턴이란 소비자의 착각, 실수, 비합리적인 지출 등을 유도하는 상술을 일컫는 용어다. 소비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자동 결제를 진행하거나 구독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다크 패턴의 대표 사례다. 우리말로는 ‘눈속임 마케팅’으로 풀이된다.
널리 사용되는 수법은 ‘무료 체험 뒤 유료 결제’다. 마케팅 명분으로 일정 기간 무료 체험 기회를 제공하지만, 이후 유료 결제로 넘어갈 땐 별다른 공지가 없거나 최종 결제 금액이 당초 안내와 다르게 책정되는 식이다. 유료 결제 취소 절차를 번거롭게 설정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실제 이와 관련 소비자 불만이 들끓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OTT 주요 6개사 관련 상담이 732건이었는데 그중 ‘계약 해제·해지와 위약금’ 관련 문의(47%)가 가장 많았다. ‘부당요금 결제 또는 구독료 중복 청구(28.9%)’ 문제가 뒤를 이었다.
이들 6개 OTT 모두 온라인으로 멤버십을 해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해지를 신청하면 사업자는 즉시 해지에 응하지 않거나,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서비스를 유지한 뒤 환불 없이 계약만 종료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가 잔여 대금을 환불받으려면 전화나 채팅 상담 등 별도 절차를 이용해야만 가능했고, 이마저도 신청하지 않으면 돌려받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통통신사와 다른 플랫폼이 협업해 내놓은 ‘결합 상품’도 혼란을 키운다. 모르는 새 서비스에 이중 가입될 소지가 많은데, 요금을 중복으로 납부하거나 계약 해지 후에도 요금이 청구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 OTT 업체 3곳은 과오납금 환불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약관이 아예 마련돼 있지 않았다. 시스템상 시청 이력이 6개월까지만 확인된다는 이유 등으로 환급 범위를 6개월로 제한하는 사업자도 있었다. 넷플릭스는 약관상 결제일로부터 7일이 지나면 중도해지나 잔여 대금 환불을 허용하고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예로 쿠팡은 와우 멤버십 가격을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하는 과정에서 지난 4월 중순~5월 초 상품 결제창에 회비 변경 등 문구를 넣고, 결제 버튼을 누를 때 멤버십 가격 인상에 무심코 동의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이 불거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런 행위를 다크 패턴으로 보고 조사에 나섰고, 쿠팡은 즉시 고객의 동의 의사를 재차 확인하는 기능을 적용하며 문제를 시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문제 의식이 높아진 덕분에 올 초에는 다크 패턴을 법으로 규제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쿠팡,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무료 서비스를 유료화하려면 14일 이전에, 정기 결제 금액을 올릴 땐 30일 이전에 소비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무료 체험으로 소비자를 꾀어내 결제를 유도하는 상술을 막기 위해서다.
다크 패턴을 금지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지만 업계에서는 한계점도 적잖다고 우려한다. 단적인 예로 과태료가 최대 500만원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태료가 지나치게 낮으면 개정안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다크 패턴 위법 행위 적발 당시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과태료로 내도록 하는 등 처벌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독 경제, 앞으로 향방은?
피로감 줄이려면 ‘구독료 유연제’를
구독 피로감이 확산하면서 업계에서는 조만간 ‘옥석 가리기’가 시작할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세로 떠오른 구독 경제 트렌드 자체는 지속되겠지만 독보적인 점유율이나 콘텐츠, 혜택을 갖고 있는 몇몇 기업 중심으로 생태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호겸 센터장은 “단순히 저렴하거나 번거로움을 줄여주는 수준의 구독 멤버십은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소비재나 지식 콘텐츠를 유료 구독 멤버십으로 운영하려면 다양한 혜택을 하나로 묶는 ‘번들링’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는 ‘킬러 콘텐츠’를 보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비용 부담에 따른 피로감이 커진 만큼, 구독료 모델이 점점 더 유연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량이 적어 혜택을 다 받지 못한 소비자에게는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장기 구독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가입 기간에 비례해 요금제를 차등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소비자는 이용량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구독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장기 구독한 사람에게는 구독료를 할인해주는 등 유연한 가격제를 도입해야 기업과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독 모델 형태 자체가 진화할 것이라는 진단도 존재한다. 핵심 키워드는 ‘하이브리드’다. 기존 온라인 기반 구독 경제 서비스에서, 하드웨어 제품과 소프트웨어 콘텐츠가 융합된 형태로 구독을 제공하는 변화다. 예를 들어 기존 자동차 시장 구독 모델은 하드웨어인 자동차를 다양하게 타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면, 앞으로는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브 옵션’ 등 소프트웨어 구독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가전 기업이 구독 시장에 뛰어들며, TV·모바일폰·냉장고 등 스마트 기기와 앱 구독 모델을 융합하는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전호겸 센터장은 “하드웨어 기업이 구독 경제에 뛰어들면 대부분 제품·서비스에서 구독 모델이 일반화될 수 있다”며 “하이브리드 구독, 그리고 점점 더 다양한 구독 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나건웅·정다운·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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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결과는 충격적. 한 달에 10만원 가까운 돈을 구독 경제에 지불하고 있었다. 유튜브와 쿠팡에 더해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카카오 이모티콘 플러스,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서비스 4개, 여기에 독서 플랫폼 밀리의서재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을 구독 중이었다. 업무상 활용도가 높은 챗GPT 플러스를 포함하면 월 결제 요금이 10만원이 넘는다.
김 씨는 “구독 서비스를 각각 결제할 당시에는 모두 필요해 보였고 비싸다는 인식도 없었는데, 다 모아놓고 보니 적잖은 돈이 나가고 있어 놀랐다. 남편과 상의 후 둘 모두 가입했던 쿠팡 와우는 하나만 유지하고 OTT 서비스도 2개로 줄였다”며 “구독 서비스가 너무 많다 보니 뭘 어떻게 쓰고 있는지 관리 자체가 안 된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구독 경제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올해 구독 경제 시장이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전체 거래액이 약 2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하지만 급속도로 성장한 구독 경제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도 적잖다. 너무 많은 유료 멤버십에 혜택을 잊고 지나칠 때가 많고, 가랑비에 옷 젖듯 비용 부담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구독 서비스가 잇따라 가격을 올리면서 ‘구독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교묘하게 가입을 유도해놓고 해지·환불을 어렵게 만든 ‘다크 패턴’도 전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구독 경제 성장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본격 부각되는 분위기다.
가랑비 옷 젖듯…구독 부담↑
1년에 50만원 구독하는 한국인
구독 경제는 한 달에 정해진 요금을 내면 그 이상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서비스로 주목받는다. ‘구독’이라는 키워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 렌털 서비스나 유료 멤버십 모두 구독이라는 이름 아래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이제는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OTT와 음원 스트리밍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 콘텐츠는 물론 이커머스, 음식 배달, 가전, 식음료, 청소·세탁 등 생활 서비스, 커피 전문점 등 업종 불문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급성장한 ‘온라인 플랫폼’이 너 나 할 것 없이 유료 멤버십을 도입하며 최근 구독 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독 경제가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고객 이탈 방지를 막는 ‘록인 효과’를 누릴 수 있고 매달 고정 매출이 안정적으로 발생한다. 지난해 쿠팡이 첫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한 배경에도 유료 멤버십인 ‘쿠팡 와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독을 하고 나면 가입자가 예전보다 소비를 늘리는 경향도 있다. 일단 비용을 냈으니, 혜택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비를 할 수록 이득일 것이라는 심리 때문이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멤버십 구독자는 비구독자보다 최소 2배, 최대 7배까지 더 소비를 한다. 자주 이용할수록 받을 수 있는 할인 혜택이 더 많도록 설계된 덕분”이라며 “단순 유료 멤버십 매출을 넘어, 자사 플랫폼 내 거래가 더 활성화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구독 서비스는 록인 효과로 기업에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해주는 모델”이라며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역시 구독 경제를 적극 도입한 기업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피로감’이다. 모두가 구독 모델을 도입하면서 소비자가 가입하는 멤버십이 무분별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장은 이득으로 느껴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손해를 보는 일이 부지기수다. 혜택을 최대한 누리려 하다 보니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
너무 많은 멤버십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어디에 가입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탓에, 돈을 내고는 있지만 정작 방치하는 서비스가 많다.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비용은 매월 자동 결제되는 반면, 서비스 이용 때마다 굳이 할인 혜택을 따져보지 않기 때문에 득실 계산이 어렵다.
예를 들어 특정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어 구독을 시작했다 수개월간 접속조차 안 하는 OTT가 생겨날 수 있다. 과거에는 보고 싶은 몇몇 콘텐츠를 골라 구매하면 됐지만, 구독 경제 대중화로 전혀 관심도 없는 콘텐츠 비용까지 포함해 내게 됐다는 점 역시 불만을 키운다.
현재 정확히 얼마를 지출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글로벌 구독 번들링·결제 전문업체인 방고(Bango)가 최근 동아시아 지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소비자는 매월 평균 구독 서비스 이용 금액으로 30달러(약 4만원)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50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국내 소비자는 평균 3.4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응답자 71%는 앱 하나로 모든 구독 서비스를 관리하고 싶다고 했고, 한곳에서 모든 구독 서비스를 관리할 수 없어서 불편하다는 지적도 전체 65%가 제기했다.
어느 정도 시장을 확보하고 나면 가격을 올려버리는 플랫폼 행태도 피로감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쿠팡은 지난 5월 와우 멤버십 가격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 올렸고, 티빙·유튜브·디즈니플러스 같은 OTT 역시 멤버십 가격을 22~42% 높였다.
새로 나온 구독 서비스도 워낙 많다. 기존에 배달비 무료 서비스를 지원하던 배달의민족은 올해 9월부터 월 3990원 ‘배민클럽’에 가입해야지만 배달비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전에는 공짜로 쓸 수 있던 서비스에 돈을 추가 지출하게 된 셈이다. 구독 서비스와 거리를 두던 스타벅스도 최근 월 9900원 유료 구독 서비스 ‘버디패스’를 선보였다. 오후 2시 이후 제조 음료 주문 시 30% 할인 쿠폰을 매일 1장씩 제공한다.
전호겸 센터장은 “구독료가 구독 기간에 정비례해 꼬박꼬박 금액이 지출되는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독 상품이 많아져서 가정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과점 또는 독점 기업이 구독 요금을 올리면 꼼짝없이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피로감이 더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피로감 1 너무 많은 구독 서비스
OTT만 8개…쇼핑·생활·가전 등 전방위
많아도 너무 많다. 구독 피로감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은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늘어난 유료 멤버십 개수다.
OTT 서비스 방고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포함한 구독형 비디오(84%)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집계됐고 음원 사이트(49%), 쇼핑 플랫폼(46%), 음식 배달(18%) 등이 뒤를 이었다.
국내 서비스를 제공 중인 OTT만 해도 8개다.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애플TV를 비롯해 티빙·웨이브·쿠팡플레이·시리즈온·왓챠 등이다. 중복되는 영상도 많지만, 저마다 플랫폼에서만 제공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탓에 3~4개씩 구독하는 이도 적잖다. 영상을 제외한 온라인 콘텐츠 구독도 많다. 멜론·지니뮤직·플로 등 음원 스트리밍, 밀리의서재와 윌라 같은 전자책 서비스, 퍼블리·롱블랙 등 분야별 콘텐츠 멤버십 가격도 월 1만원에 육박한다.
금융·증권가에서도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곳이 많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신한 쏠증권 앱에서 유료 투자 정보 구독 서비스인 ‘분석플러스’를 선보였다. 현재 테마와 관련된 지표를 분석해주는 ‘테마 분석’과 수급 정보를 한곳에 모아서 분석해주는 ‘종목 분석’으로 구성됐는데, 해당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 각각 월 5900원을 내야 한다. 유진투자증권도 구독형 투자 정보 서비스 ‘쏙쏙멤버십’을 월 3000원에, KB증권도 투자 정보 구독 서비스 ‘프라임클럽’을 월 1만원에 유료로 운영하고 있다. 토스는 토스증권 등과 연계해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 캐시백, 토스페이 할인·적립 등 혜택을 주는 ‘토스프라임’을 월 5900원에 서비스한다.
쇼핑 멤버십도 한둘이 아니다. 쿠팡 와우(월 7890원), 네이버플러스(월 4900원),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연 3만원), 컬리멤버스(월 1900원), 11번가 우주패스(월 4900원) 등이 대표적이다. 개수가 많거니와, 저마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분야가 워낙 다양해, 소비자 입장에서 득실을 따지려면 머리를 싸매야 한다. 배민클럽(월 3990원), 요기패스X(월 2900원) 등 배달 플랫폼 멤버십도 생겨났다.
구독 경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오프라인 매장도 구독 열풍에 합류했다. 스타벅스는 지난 10월 1일 새 유료 구독 ‘버디패스’ 시범 운영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다. 월 9900원에 오후 2시 이후 음료를 30% 할인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최다 판매 품목인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할인폭(1350원)을 계산하면, 월 8잔 이상 마셔야 본전을 뽑는다. 하지만 오후 2시 이후라는 제한, 여기에 기존 신세계그룹 전체 유료 멤버십인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 주요 혜택 중 하나가 스타벅스 음료 쿠폰이라는 점에서 서로 고객을 잠식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 우려도 나온다. 커피빈코리아 역시 연회비 3만원 ‘오로라 멤버스’로 상시 10% 할인 혜택을 지난해부터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업계도 구독 경제에 뛰어들었다. 편의점 CU는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포켓CU에서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10여종 상품 카테고리 중 원하는 품목 월 구독료(1000~4000원)를 내면 정해진 횟수만큼 정기 할인을 받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월 2500원짜리 ‘포켓CU 간편 식사’ 구독 상품에 가입하면 삼각김밥·햄버거 등 제품을 월 25% 할인해준다. GS25도 도시락·샐러드 할인(월 3990원), 카페 제품 할인(월 2500원) 같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유료 멤버십이 넘쳐난다. 이모티콘을 무제한 쓸 수 있는 카카오 이모티콘 플러스(월 3900원), 세탁·수거 플랫폼 ‘세탁특공대(월 5900원)’를 비롯해 ‘런드리고’ 역시 최대 13만5000원짜리 월정액 상품을 마련해놨다. 최근에는 챗GPT를 비롯해 문서 편집·번역·이미지 생성·보도자료 작성 등 다양한 인공지능(AI) 서비스에서 유료 구독 모델을 도입하는 추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록인 효과로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탓에 어느 순간 너도나도 구독 모델을 도입했다”며 “소비 전략을 철저히 세우는 소비자라면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자주 쓰지도 않는 서비스에 멤버십 비용만 추가 지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피로감이 커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피로감 2 구독플레이션
유튜브, 한 번에 요금 42.5% ‘쑥’
가뜩이나 구독하는 서비스가 많은데, OTT를 중심으로 구독료를 올리고 있어 부담은 더욱 가중되는 중이다. 구독과 인플레이션 합성어인 ‘구독플레이션’이 신조어로 떠올랐을 정도다.
실제 구독료 부담이 한결 커졌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품목별로 살펴보면 OTT 등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 물가지수는 107.44로 2021년 9월(100.37) 이후 6.77포인트 올랐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를 조사하기 위해 458개 ‘대표 품목’을 대상으로 물가를 조사하는데, 이때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 가중치는 8이다. 국산 소고기(8.6)나 돼지고기(9.8) 가격과 비슷한 강도로 물가지수를 좌우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상폭은 훨씬 크다. 유튜브는 지난해 12월 기존 1만450원이던 ‘프리미엄 요금제’ 가격을 1만4900원으로 42.5% 인상했다. 유튜브가 구독료를 올린 것은 2020년 9월(8690원 → 1만450원) 이후 3년여 만이다.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도 9900원이던 구독료를 2년 만인 지난해 11월 40.4% 인상했다. 단일 요금제를 ‘스탠다드(9900원)’와 ‘프리미엄(1만3900원)’ 요금제로 개편하며 사실상 요금 인상에 나섰다. 넷플릭스는 가장 저렴한 요금제였던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를 없애고 광고를 보는 대신 가격을 낮춘 광고형 요금제(월 5500원)를 선보이기도 했다. 무광고 요금제 중 가장 저렴한 것은 스탠다드(월 1만3500원)다. 이전과 비교하면 4000원 오른 셈이다. 또 세대 외부에서 계정을 공유할 경우 기존 요금에 5000원을 추가하기도 했다.
국내 플랫폼도 예외는 아니다. 쿠팡은 올해 8월부터 유료 멤버십이던 ‘와우 회원’ 멤버십 구독료를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1% 인상했다. 2021년 12월 이전에는 2900원이었으니, 3년도 안 돼 구독료가 2.5배 가까이 오른 모습이다.
스트리밍 플랫폼 ‘숲(옛 아프리카TV)’도 오는 11월부터 구독료를 올리기로 했다. 구독 모델을 티어1·2로 나눠 개편하고 기존 티어1 구독료를 월 3300원(PC·웹 기준)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새로 선보이는 티어2는 월 1만4500원으로 책정했다.
대다수 구독제 서비스가 2~3년에 한 번씩 요금을 올리고 있고 인상폭은 두 자릿수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비싸면 구독을 해지하면 그만”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플랫폼에 ‘록인’돼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쉽지만은 않다. 앞서 2021년 쿠팡이 구독료를 72% 올릴 당시에도 쿠팡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오히려 늘었다. 2021년 900만명이던 와우 멤버십 회원 수는 지난해 1400만명으로 급증했다. 쿠팡이 전국 단위 새벽배송을 운영하는 등 시장을 장악하면서 ‘쿠팡 없이 살 수 없는’ 소비자가 많아진 셈이다.
플랫폼마다 구독료를 인상하고 있지만 문제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 서비스에서 크게 개선된 것이 없는데 소비자 지출만 늘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다은 씨는 “OTT는 영상 시청 시간을 일부러 늘리지 않으면 본전도 못 건진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배달 앱 멤버십 역시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서 쓰고는 있지만,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면 멤버십을 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로감 3 ‘다크 패턴’에 구독당하다
모르는 새 구독…환불 절차 까다로워
구독 경제가 피곤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다크 패턴(Dark pattern)’ 때문이다. 다크 패턴이란 소비자의 착각, 실수, 비합리적인 지출 등을 유도하는 상술을 일컫는 용어다. 소비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자동 결제를 진행하거나 구독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다크 패턴의 대표 사례다. 우리말로는 ‘눈속임 마케팅’으로 풀이된다.
널리 사용되는 수법은 ‘무료 체험 뒤 유료 결제’다. 마케팅 명분으로 일정 기간 무료 체험 기회를 제공하지만, 이후 유료 결제로 넘어갈 땐 별다른 공지가 없거나 최종 결제 금액이 당초 안내와 다르게 책정되는 식이다. 유료 결제 취소 절차를 번거롭게 설정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실제 이와 관련 소비자 불만이 들끓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OTT 주요 6개사 관련 상담이 732건이었는데 그중 ‘계약 해제·해지와 위약금’ 관련 문의(47%)가 가장 많았다. ‘부당요금 결제 또는 구독료 중복 청구(28.9%)’ 문제가 뒤를 이었다.
이들 6개 OTT 모두 온라인으로 멤버십을 해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해지를 신청하면 사업자는 즉시 해지에 응하지 않거나,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서비스를 유지한 뒤 환불 없이 계약만 종료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가 잔여 대금을 환불받으려면 전화나 채팅 상담 등 별도 절차를 이용해야만 가능했고, 이마저도 신청하지 않으면 돌려받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통통신사와 다른 플랫폼이 협업해 내놓은 ‘결합 상품’도 혼란을 키운다. 모르는 새 서비스에 이중 가입될 소지가 많은데, 요금을 중복으로 납부하거나 계약 해지 후에도 요금이 청구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 OTT 업체 3곳은 과오납금 환불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약관이 아예 마련돼 있지 않았다. 시스템상 시청 이력이 6개월까지만 확인된다는 이유 등으로 환급 범위를 6개월로 제한하는 사업자도 있었다. 넷플릭스는 약관상 결제일로부터 7일이 지나면 중도해지나 잔여 대금 환불을 허용하고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예로 쿠팡은 와우 멤버십 가격을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하는 과정에서 지난 4월 중순~5월 초 상품 결제창에 회비 변경 등 문구를 넣고, 결제 버튼을 누를 때 멤버십 가격 인상에 무심코 동의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이 불거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런 행위를 다크 패턴으로 보고 조사에 나섰고, 쿠팡은 즉시 고객의 동의 의사를 재차 확인하는 기능을 적용하며 문제를 시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문제 의식이 높아진 덕분에 올 초에는 다크 패턴을 법으로 규제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쿠팡,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무료 서비스를 유료화하려면 14일 이전에, 정기 결제 금액을 올릴 땐 30일 이전에 소비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무료 체험으로 소비자를 꾀어내 결제를 유도하는 상술을 막기 위해서다.
다크 패턴을 금지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지만 업계에서는 한계점도 적잖다고 우려한다. 단적인 예로 과태료가 최대 500만원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태료가 지나치게 낮으면 개정안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다크 패턴 위법 행위 적발 당시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과태료로 내도록 하는 등 처벌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독 경제, 앞으로 향방은?
피로감 줄이려면 ‘구독료 유연제’를
구독 피로감이 확산하면서 업계에서는 조만간 ‘옥석 가리기’가 시작할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세로 떠오른 구독 경제 트렌드 자체는 지속되겠지만 독보적인 점유율이나 콘텐츠, 혜택을 갖고 있는 몇몇 기업 중심으로 생태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호겸 센터장은 “단순히 저렴하거나 번거로움을 줄여주는 수준의 구독 멤버십은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소비재나 지식 콘텐츠를 유료 구독 멤버십으로 운영하려면 다양한 혜택을 하나로 묶는 ‘번들링’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는 ‘킬러 콘텐츠’를 보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비용 부담에 따른 피로감이 커진 만큼, 구독료 모델이 점점 더 유연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예를 들어 서비스 이용량이 적어 혜택을 다 받지 못한 소비자에게는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장기 구독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가입 기간에 비례해 요금제를 차등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재 소비자는 이용량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구독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장기 구독한 사람에게는 구독료를 할인해주는 등 유연한 가격제를 도입해야 기업과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독 모델 형태 자체가 진화할 것이라는 진단도 존재한다. 핵심 키워드는 ‘하이브리드’다. 기존 온라인 기반 구독 경제 서비스에서, 하드웨어 제품과 소프트웨어 콘텐츠가 융합된 형태로 구독을 제공하는 변화다. 예를 들어 기존 자동차 시장 구독 모델은 하드웨어인 자동차를 다양하게 타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면, 앞으로는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브 옵션’ 등 소프트웨어 구독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가전 기업이 구독 시장에 뛰어들며, TV·모바일폰·냉장고 등 스마트 기기와 앱 구독 모델을 융합하는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전호겸 센터장은 “하드웨어 기업이 구독 경제에 뛰어들면 대부분 제품·서비스에서 구독 모델이 일반화될 수 있다”며 “하이브리드 구독, 그리고 점점 더 다양한 구독 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나건웅·정다운·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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