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니라 지금"…유통가 배송 '분단위 속도戰'
쿠팡 '로켓배송'이 불을 지핀 유통업계 배송 속도전이 끝을 모르고 계속 가열되는 모양새다. 기업들은 당일, 새벽 배송을 넘어 오토바이로 물건을 소비자들에게 주문 접수 후 바로 배달하는 즉시 배송 서비스까지 확대하는 등 '분 단위' 경쟁에 본격 발을 들이고 있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퀵커머스 시장 규모는 사업 초창기인 지난 2020년까지만 해도 3500억원 규모에 머물렀으나 2021년(1조2000억원)을 기점으로 매년 조 단위로 덩치를 불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에는 외형이 5조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 상태다.
코로나19와 함께 비대면 소비가 보편화된 이후 신규 사업자 유입 자체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이른바 '속도전'에 참전한 기업들이 업종마저 가리지 않고 서비스를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퀵커머스는 사업 초기 상대적으로 취급·운반이 용이한 화장품이나 신속 배송이 유리한 신선식품을 위주로 성장해왔다. 70여개 도심형 유통센터를 구축해 제휴 업체로부터 직매입한 상품을 1시간 내로 즉시 배달해주는 배달의 민족 'B마트'가 대표적 사례다.
컬리 역시 밀키트, 생필품 등을 1시간 내외로 배송해주는 '컬리나우'를 운영 중이다. 올 6월 서울 서대문·마포·은평구 일대에서 처음 시작된 해당 서비스는 지난달 강남권으로 확대된 상태다.
최근에는 이커머스뿐만 아니라 편의점, 대형마트까지 배달 플랫폼과 연계 참여하며 판을 키우고 나섰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과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지난 6월 아예 '사촌 동맹'을 맺었다. CJ대한통운이 G마켓, 옥션, SSG닷컴 등 신세계 계열 이커머스와 서비스를 연계해 배송 비용은 줄이고 속도는 높이기로 한 것이다.
이미 G마켓과 CJ대한통운은 평일 기준 오후 8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을 보장하는 '스타배송'을 지난 9월 말부터 시작한 상태다. 편의점 중에서는 GS리테일의 퀵커머스 서비스 규모가 가장 크다. 현재 편의점 GS25 1만5000여개와 GS더프레시 500여개 매장에서 즉시 배송 주문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 속도전뿐만 아니라 사실상 품목 제한마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설치기사의 직접 방문이 필요한 가전제품 부문까지 당일 배송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이미 지난 6월부터 수도권에서 TV·냉장고·김치냉장고 등 3개 품목에 대해 '오늘설치'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특정 제품을 오후 1시까지 주문하면 7만원에 당일 배송·설치해주는 서비스다. 고객 이용률이 예상보다 뜨겁자 롯데하이마트는 서비스 품목을 세탁기, 의류건조기, 의류관리기까지 확장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쿠팡과 함께 '이커머스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네이버 역시 1시간 만에 주문 제품을 받아보는 '지금 배송'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어 업계 내 큰 파도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는 내년 상반기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라는 명칭의 AI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해 오늘배송, 내일배송, 새벽배송, 희망일 배송뿐만 아니라 퀵커머스인 '지금배송'까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서비스는 편의점과 동네 슈퍼, 오프라인 매장이 있는 스마트스토어 제품까지 아우른다.
다만 멈출 줄 모르고 격화하는 배송 시스템 속도전이 배송 수수료나 인력난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많다. 퀵커머스 서비스가 고도화할수록 고객 편의는 개선되지만 결국 배송 노동자들이 짊어지는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원하는 제품을 빠르게 받고 싶은 욕구를 지녔을 수밖에 없다. 이 욕구를 퀵커머스가 충족시켜주기 시작한 데다 자체적으로 물류기술 발전까지 이뤄내면서 배송 속도전이 '분 단위'를 다툴 정도로 격화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짚어봐야 할 부분은 결국 배송 노동자들의 과로에 대한 문제다. 주말, 공휴일까지 배송일을 늘리거나 단거리 내 빠른 배송이 유연한 형태로 가능케 하려면 결국 처우를 개선하고 추가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는 방안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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