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버틸 자신없어요…다들 저보고 죽을 것 같대요"
[택배공화국 대한민국] ② 택배기사 15시간 밀착 동행
“같이 일하는 동생들이 저보고 곧 죽을 것 같대요.”
지난 12일 수도권의 한 물류센터에서 약 15시간 동안 밀착 동행 취재를 함께 한 쿠팡 택배기사 A씨가 퇴근길에 던진 말이었다. 그는 회사(대리점)에서 인정하는 ‘모범생’ 택배기사다. 쿠팡에 온 지는 2년이 조금 안 됐다. 배송률, 반품 회수율, 프레시백 회수율, 신선식품 제한 시간 내 배송률 등 소위 ‘펑크’를 거의 내는 일이 없다.
오전 6시30분 수도권 한 물류센터. 동이 트기도 전에 들어선 물류센터에서는 입차(물건을 싣는일) 작업이 한창이었다. 2m가량 돼 보이는 높이의 롤테이너에 물건이 가득 담겨 왔다. 우선 A씨 구역 물품과 다른 기사 구역 물품을 분류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봉투 포장 제품, 박스 포장 제품을 나눴다. 봉투 제품은 구역대로 플라스틱 박스에 나누고, 박스 제품은 동선에 따라 A씨가 탑차에 실었다. A씨는 “오늘은 생각보다 양호한 편”이라며 “한 130개 정도 들어온 거 같은데 많을 땐 150개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A씨가 실제 이날 1회전 배송에 소화한 물량은 170건이었다.
롤테이너 2개 물량만 입차했는데도 기진맥진했다. 선선한 날이었는데도 땀이 났다. 택배기사 대부분이 반팔차림이었던 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배송지로 향한 시간은 오전 9시40분. 입차에만 3시간 넘게 걸렸다. 그때부터 A씨는 1분의 쉴 틈도 없이 차를 운전하고, 물건을 뛰면서 날랐다. A씨 구역은 노후 건물이 많아 승강기가 설치된 곳이 없는 곳들이었다.
소비자 입장이었을 때는 편리했던 배송 완료 확인 사진은 택배기사들의 배송 시간을 지체하게 했다. 물건을 놓을 때마다 일일이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켜 사진을 찍고 배달완료 버튼을 눌러야했다. 노후한 도심이라 좁은 골목골목을 탑차가 다니기도 어려웠다. 일을 시작한 지 6시간째 처음으로 화장실을 갔다. 그는 “처음엔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 건물도 찾지 못해 페트병을 들고 다니며 차 안에서 소변을 봤다”고 했다.
오후 1시30분. 물류센터에서 입차를 시작한 지는 7시간째, 배송을 시작한 지는 고작 3시간째인데 앞이 깜깜했다. 아직도 탑차에 가득한 봉투와 상자들을 보니 힘이 쭉 빠졌다. A씨는 “점심,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다. 가다가 편의점이 보이면 가끔 음료나 초코바 같은 거로 때우는 편인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A씨를 만난 오전 6시30분부터 퇴근시간인 오후 8시40분까지 먹은 건 아이스아메리카노 1잔과 이온음료 1병뿐이었다.
1회전 배송을 마친 시각은 오후 2시30분. 다시 물류센터로 들어가서 오전 6시30분에 했던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A씨는 1회전 배송 때와는 눈에 띄게 지쳐 보였다. ‘복사+붙여넣기’하듯이 똑같은 구역을 오후 5시부터 돌기 시작했다.
2회전의 맹점은 신선식품을 오후 8시까지 모두 배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2회전 배송 물량은 160건이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A씨는 1회전 때보다 더 자주 뛰어다녔다. 그는 “신선식품 미스(miss)날 것 같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도 뛸 수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심야 로켓배송을 업무를 하다 숨진 쿠팡CLS 기사 고 정슬기씨가 배송 독촉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한 대목이 떠오르는 답이었다.
신선식품 배송을 완료한 시각은 오후 7시35분. 그는 “이 정도면 아주 여유있게 마친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힘든데 굳이 그만두지 않는 이유가 쿠팡이 다른 곳보다 처우가 좋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지도 않다. 건당 차등을 두고, 분류작업에 프레시백 회수, 신선식품 제한시간까지 생기면서 할 일이 너무 많다”며 “탑차 할부값, 사업자 보험만 끝나면 어떻게든 이직할 생각이다. 내년 여름을 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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