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중독성과 돈맛…"성인이 된 지금도 스스로와 싸웁니다"
온라인 도박 중독 청소년들
4년 후 현재의 모습은
지난달 19일 전남 순천에서 만난 염정문씨(19·가명)는 육중한 체구에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아직 앳된 티도 조금 남았다. 그와 처음 만난 건 청소년 도박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한 2020년 9월16일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사이버 도박에 빠져 동년배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던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성인이 된 그와 다시 만났다. 청소년 도박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1년 동안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검거한 사람의 절반가량이 19세 미만 청소년이었다. 1억9000만원을 탕진한 16세 남학생도 붙잡혔다. 과거 정문씨도 그랬다.
성인이 된 그는 지금 배달 라이더다. “성실히 일한다”고 했다. 하루 7시간 일하며 약 50건의 배달을 소화한다. 비용을 빼면 매달 300만원 안팎을 번다. 그는 아직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도박을 안 한 지 수개월 된다고 했지만, 여전히 유혹에 흔들렸다.
멈췄지만…돈 생기면 생각나
중학생 시절 도박 빚으로 소년원행
일해서 빚 다 갚고 나서도 찾게 돼
충동 커질 때면 낚시하면서 버텨
정문씨의 이야기
정문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도박 빚으로 여러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을 다녀왔다. 도박 중독 탓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중독의 무서움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중학생 때 기자와 인터뷰할 때도 “도박으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고 정확히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도 도박 생각이 사라지질 않는다.
“돈이 생기면 하고 싶어요. 어쩌다 돈을 따기도 하니까요.”
돈을 따는 일이 생겨도 결국 잃는다. 정문씨도 열 번에 일곱 번 이상은 잃는다는 걸 안다. 도박 사이트에선 한두 번 돈을 따도록 ‘설계’한다. 설계 의도대로 도박을 접한 이들은 언젠가 본전을 찾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정문씨도 이런 희망에 당해왔다. 목돈이 생겨 새로 산 오토바이를 도박 빚 때문에 얼마 타보지도 못하고 헐값에 판 일도 있다.
“도박하면 다 잃는다고 얘기하죠. 저도 알아요. 근데 그때는 말해도 안 들려요.” 정문씨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얘기하겠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도박하던 형들이나 친구들은 아직도 해요. 군대 가서 하는 사람도 많고. 교도소 간 사람도 있어요. 도박 빚 때문에 사기 치고 그래요.”
정문씨는 주변의 또래 상당수가 도박에 빠져 있다고 했다. 청소년 시절 빠진 도박이 군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군대 간 친구 얘긴데, 부대 내 생활관에 스마트폰과 TV를 연결해 다른 병사들과 모여 도박을 같이한다고 해요.” 상관들이 제지하지 않냐고 물었다. “부사관들도 한대요. 오히려 병사들에게 돈을 빌린대요.”
“요즘 애들은 다 할 거예요. 10명 있으면 8~9명은 하지 않을까요. 공부 잘하고 못하고 그런 것 없어요. 지금은 더 많이 해요.” 도박을 접한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정문씨는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카드 게임의 일종인 바카라를 많이 한다고 했다. 한 판에 1000원부터 수억원까지 걸 수 있다. 4년 전에는 파워볼, 사다리타기 같은 도박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예전에 하던 것은 5분 정도 걸리는데, 바카라는 한 판이 30초면 끝나요.”
짧은 ‘쇼츠’ 영상 중독성이 강한 것처럼 순식간에 결판 나는 바카라를 통해 청소년들은 도박에 더 깊이 빠진다. 짧은 시간 짜릿한 중독성에 빠져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깊은 생각을 하기 어렵게 한다. 인터뷰 중 정문씨의 답은 단답형일 때가 많았다. 질문에 쉽게 집중하지도 못했다. 기자가 동석한 정문씨 어머니와 지역에서 청소년 지원 활동을 하는 박흥주 목사(순천 기독교청소년협회)와 대화하는 동안에 그는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 박 목사는 이런 그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박 목사는 4년 전 인터뷰에도 동석했다. “예전에는 어려서 퉁명스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고 대화를 쉽게 못 이어가네요. 도박 때문인지 걱정돼요.”
박 목사는 청소년들이 도박을 접하는 나이가 더 어려졌다고 했다. “초등학생도 생각보다 많아요. 마약이나 도박이나 중독 종류가 똑같다고 하던데, 어려서 도박에 중독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이 있겠죠. 집중력뿐 아니라, 돈가치나 노동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게 될 거예요.”
‘도박을 안 했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 것 같냐’고 정문씨에게 물었다. “엄마 차가 외제였을 것 같아요.” 정문씨 말에 옆에 있던 어머니가 허탈하게 웃었다. 정문씨 어머니는 아들이 도박으로 빚이 생기면 처음엔 ‘큰돈이 아니니까’라며 갚아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빚을 갚아주던 게 오히려 중독을 심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단도박 부모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부모님들이 대신 빚을 갚아줬다는 얘기가 많더라고요.” 정문씨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섬에 가서 살까란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도박을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아서다. “정문이가 마음먹고 열심히 일해 도박 빚을 다 갚은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니까 허무해하더라고요. 잘 참으면서 일하려는 목표 의식이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던 것 같아요.”
정문씨는 도박을 하고 싶으면 낚시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낚싯대를 펼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물고기를 잡아채는 일이 생각보다 도박의 유혹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지금도 도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은행 계좌도 만들어주면 안 돼요. 휴대폰도 없애고.” 어떻게 해야 청소년들이 도박하지 못하게 할지 물으니 정문씨는 이렇게 답했다. 처음부터 도박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하지 말라 한다고 안 하겠어요. 그냥 접근 자체를 못하게 해야죠.” 정문씨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과연 도박 중독을 막을 방법이 있는지엔 회의적인 듯했다.
끊었지만…돈의 유혹은 극복 중
고3 때 가족들 도움으로 ‘단도박’
SNS 속 화려한 삶, 돈 좇게 만들어
학교에서 돈의 가치 가르쳤으면
주민씨의 이야기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4년 전 만났던 박주민씨(22·가명)도 청소년 도박 중독자였다. 당시 고교 3학년생이던 주민씨는 다이어트와 도박의 영향으로 마른 체형이었는데, 이제는 살과 근육이 붙어 제법 듬직한 체형으로 변했다. 주민씨는 고교 시절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맞히는 ‘불법 사설 토토’에 빠진 중독자였다. 지금은 단도박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최근 연락했더니 그는 ‘명함을 보내달라’며 경계했다. “스팸인 줄 알았어요. 아직도 도박 사이트에 제 연락처가 남아 있는지, 연락이 계속 오거든요.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까 봐 번호도 못 바꿔요.”
주민씨는 도박에서 벗어나는 데 군대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다음 1학년 1학기 때 친구와 동반 입대해 철원의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했다. 통신사 신호가 잘 안 잡혀서 스마트폰 사용이 쉽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부대 안에서 도박하는 병사들이 가끔 눈에 띄었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과거를 반성하고 조그만 것에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자신이 도박에 빠져 지냈던 모습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때 도박에 빠졌던 것 같냐’고 묻자 그는 “돈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청소년도 돈이 중요하다는 건 알잖아요. 아르바이트는 힘들고, 주위에 돈을 땄다는 친구도 있으니까 도박을 하게 되죠. 도박하면 처음에는 좀 따는 일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큰돈을 만지게 되니 쉽게 쓰는 거죠. 그럼 아르바이트도 도박할 돈 모으려고 하게 돼요. 중독되면서 도파민에 절었던 것 같아요. 성인도 통제가 안 되는데 청소년들은 얼마나 빠지겠어요.”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SNS에서 일상을 공유하잖아요. 용돈이 2만원밖에 안 되는 중고생들이 명품을 입고 다니잖아요. 너희 집 전세냐 자가냐 묻고, 해외여행도 못 가는 거지라고 놀리기도 하고요. 물질 만능주의에 세뇌된 거죠. 이게 도박에 빠지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경찰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들 돈이 최고라 하고, 도박하면 쉽게 벌 수 있을 거로 생각하죠. 본질적인 문제는 돈이죠. 그러다 중독되는 것이고요.”
주민씨는 가족의 지원으로 고3 시절 단도박을 시작했다. 상담도 받았다. 돈 관리를 모두 아버지에게 맡겼다.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가족의 도움이 필수예요.” 그는 말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휴대폰 없애고 돈 관리는 전부 부모님이 해줘야죠. 저는 5000원을 써도 영수증을 아버지에게 줘야 했어요.” 주민씨는 도박에 빠졌던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믿지 마세요. 자식을 사랑하면 믿으면 안 돼요. 오히려 보듬어주면 망나니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 열정을 다른 곳에 썼으면 지금 더 잘됐을 것 같아요. 차라리 빨리 경험한 게 나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도박에 빠졌으면 더 심했을 테니까요.”
도박 예방법을 묻자 그는 청소년에게 돈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 이유가 돈 때문인데,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잖아요. 애들이 도박으로 돈을 배우는 거예요.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민씨는 진로를 고민한다. 도박 중독의 뿌리인 돈 욕심을 극복하려 한다. “돈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물질적인 것을 좀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남들보다 아끼고 살면 되지, 허황한 꿈은 꾸지 말자. 평범하게 욕심 없이 살자.” 그는 이런 다짐을 다시 새기면서 인터뷰에 나섰다고 말했다. 젊은 나이에 돈과 물질의 허황함을 깨닫고, 도박에서 벗어나려는 그는 도인이 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경향신문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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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현재의 모습은
한때 도박 중독에 빠졌다가 벗어난 청소년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중독의 경계에서 싸운다. 염정문씨(가명·왼쪽 실루엣)는 도박의 유혹을 늘 참고 또 참는다고 했다. 박주민씨 스마트폰으로는 단도박 4년 뒤에도 도박 사이트 광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사진 전현진 기자·그래픽 성덕환 기자
지난달 19일 전남 순천에서 만난 염정문씨(19·가명)는 육중한 체구에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아직 앳된 티도 조금 남았다. 그와 처음 만난 건 청소년 도박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한 2020년 9월16일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사이버 도박에 빠져 동년배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던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성인이 된 그와 다시 만났다. 청소년 도박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1년 동안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검거한 사람의 절반가량이 19세 미만 청소년이었다. 1억9000만원을 탕진한 16세 남학생도 붙잡혔다. 과거 정문씨도 그랬다.
성인이 된 그는 지금 배달 라이더다. “성실히 일한다”고 했다. 하루 7시간 일하며 약 50건의 배달을 소화한다. 비용을 빼면 매달 300만원 안팎을 번다. 그는 아직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도박을 안 한 지 수개월 된다고 했지만, 여전히 유혹에 흔들렸다.
멈췄지만…돈 생기면 생각나
중학생 시절 도박 빚으로 소년원행
일해서 빚 다 갚고 나서도 찾게 돼
충동 커질 때면 낚시하면서 버텨
정문씨의 이야기
정문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도박 빚으로 여러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을 다녀왔다. 도박 중독 탓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중독의 무서움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중학생 때 기자와 인터뷰할 때도 “도박으로는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고 정확히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도 도박 생각이 사라지질 않는다.
“돈이 생기면 하고 싶어요. 어쩌다 돈을 따기도 하니까요.”
돈을 따는 일이 생겨도 결국 잃는다. 정문씨도 열 번에 일곱 번 이상은 잃는다는 걸 안다. 도박 사이트에선 한두 번 돈을 따도록 ‘설계’한다. 설계 의도대로 도박을 접한 이들은 언젠가 본전을 찾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정문씨도 이런 희망에 당해왔다. 목돈이 생겨 새로 산 오토바이를 도박 빚 때문에 얼마 타보지도 못하고 헐값에 판 일도 있다.
“도박하면 다 잃는다고 얘기하죠. 저도 알아요. 근데 그때는 말해도 안 들려요.” 정문씨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얘기하겠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도박하던 형들이나 친구들은 아직도 해요. 군대 가서 하는 사람도 많고. 교도소 간 사람도 있어요. 도박 빚 때문에 사기 치고 그래요.”
정문씨는 주변의 또래 상당수가 도박에 빠져 있다고 했다. 청소년 시절 빠진 도박이 군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군대 간 친구 얘긴데, 부대 내 생활관에 스마트폰과 TV를 연결해 다른 병사들과 모여 도박을 같이한다고 해요.” 상관들이 제지하지 않냐고 물었다. “부사관들도 한대요. 오히려 병사들에게 돈을 빌린대요.”
“요즘 애들은 다 할 거예요. 10명 있으면 8~9명은 하지 않을까요. 공부 잘하고 못하고 그런 것 없어요. 지금은 더 많이 해요.” 도박을 접한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정문씨는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카드 게임의 일종인 바카라를 많이 한다고 했다. 한 판에 1000원부터 수억원까지 걸 수 있다. 4년 전에는 파워볼, 사다리타기 같은 도박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예전에 하던 것은 5분 정도 걸리는데, 바카라는 한 판이 30초면 끝나요.”
짧은 ‘쇼츠’ 영상 중독성이 강한 것처럼 순식간에 결판 나는 바카라를 통해 청소년들은 도박에 더 깊이 빠진다. 짧은 시간 짜릿한 중독성에 빠져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깊은 생각을 하기 어렵게 한다. 인터뷰 중 정문씨의 답은 단답형일 때가 많았다. 질문에 쉽게 집중하지도 못했다. 기자가 동석한 정문씨 어머니와 지역에서 청소년 지원 활동을 하는 박흥주 목사(순천 기독교청소년협회)와 대화하는 동안에 그는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 박 목사는 이런 그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박 목사는 4년 전 인터뷰에도 동석했다. “예전에는 어려서 퉁명스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고 대화를 쉽게 못 이어가네요. 도박 때문인지 걱정돼요.”
박 목사는 청소년들이 도박을 접하는 나이가 더 어려졌다고 했다. “초등학생도 생각보다 많아요. 마약이나 도박이나 중독 종류가 똑같다고 하던데, 어려서 도박에 중독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이 있겠죠. 집중력뿐 아니라, 돈가치나 노동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게 될 거예요.”
‘도박을 안 했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 것 같냐’고 정문씨에게 물었다. “엄마 차가 외제였을 것 같아요.” 정문씨 말에 옆에 있던 어머니가 허탈하게 웃었다. 정문씨 어머니는 아들이 도박으로 빚이 생기면 처음엔 ‘큰돈이 아니니까’라며 갚아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빚을 갚아주던 게 오히려 중독을 심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단도박 부모 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부모님들이 대신 빚을 갚아줬다는 얘기가 많더라고요.” 정문씨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섬에 가서 살까란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도박을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아서다. “정문이가 마음먹고 열심히 일해 도박 빚을 다 갚은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니까 허무해하더라고요. 잘 참으면서 일하려는 목표 의식이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던 것 같아요.”
정문씨는 도박을 하고 싶으면 낚시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낚싯대를 펼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물고기를 잡아채는 일이 생각보다 도박의 유혹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지금도 도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은행 계좌도 만들어주면 안 돼요. 휴대폰도 없애고.” 어떻게 해야 청소년들이 도박하지 못하게 할지 물으니 정문씨는 이렇게 답했다. 처음부터 도박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하지 말라 한다고 안 하겠어요. 그냥 접근 자체를 못하게 해야죠.” 정문씨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과연 도박 중독을 막을 방법이 있는지엔 회의적인 듯했다.
끊었지만…돈의 유혹은 극복 중
고3 때 가족들 도움으로 ‘단도박’
SNS 속 화려한 삶, 돈 좇게 만들어
학교에서 돈의 가치 가르쳤으면
주민씨의 이야기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4년 전 만났던 박주민씨(22·가명)도 청소년 도박 중독자였다. 당시 고교 3학년생이던 주민씨는 다이어트와 도박의 영향으로 마른 체형이었는데, 이제는 살과 근육이 붙어 제법 듬직한 체형으로 변했다. 주민씨는 고교 시절 스포츠 경기의 결과를 맞히는 ‘불법 사설 토토’에 빠진 중독자였다. 지금은 단도박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최근 연락했더니 그는 ‘명함을 보내달라’며 경계했다. “스팸인 줄 알았어요. 아직도 도박 사이트에 제 연락처가 남아 있는지, 연락이 계속 오거든요.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까 봐 번호도 못 바꿔요.”
주민씨는 도박에서 벗어나는 데 군대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다음 1학년 1학기 때 친구와 동반 입대해 철원의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했다. 통신사 신호가 잘 안 잡혀서 스마트폰 사용이 쉽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부대 안에서 도박하는 병사들이 가끔 눈에 띄었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과거를 반성하고 조그만 것에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자신이 도박에 빠져 지냈던 모습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때 도박에 빠졌던 것 같냐’고 묻자 그는 “돈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청소년도 돈이 중요하다는 건 알잖아요. 아르바이트는 힘들고, 주위에 돈을 땄다는 친구도 있으니까 도박을 하게 되죠. 도박하면 처음에는 좀 따는 일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큰돈을 만지게 되니 쉽게 쓰는 거죠. 그럼 아르바이트도 도박할 돈 모으려고 하게 돼요. 중독되면서 도파민에 절었던 것 같아요. 성인도 통제가 안 되는데 청소년들은 얼마나 빠지겠어요.”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SNS에서 일상을 공유하잖아요. 용돈이 2만원밖에 안 되는 중고생들이 명품을 입고 다니잖아요. 너희 집 전세냐 자가냐 묻고, 해외여행도 못 가는 거지라고 놀리기도 하고요. 물질 만능주의에 세뇌된 거죠. 이게 도박에 빠지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경찰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들 돈이 최고라 하고, 도박하면 쉽게 벌 수 있을 거로 생각하죠. 본질적인 문제는 돈이죠. 그러다 중독되는 것이고요.”
주민씨는 가족의 지원으로 고3 시절 단도박을 시작했다. 상담도 받았다. 돈 관리를 모두 아버지에게 맡겼다.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가족의 도움이 필수예요.” 그는 말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휴대폰 없애고 돈 관리는 전부 부모님이 해줘야죠. 저는 5000원을 써도 영수증을 아버지에게 줘야 했어요.” 주민씨는 도박에 빠졌던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믿지 마세요. 자식을 사랑하면 믿으면 안 돼요. 오히려 보듬어주면 망나니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 열정을 다른 곳에 썼으면 지금 더 잘됐을 것 같아요. 차라리 빨리 경험한 게 나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도박에 빠졌으면 더 심했을 테니까요.”
도박 예방법을 묻자 그는 청소년에게 돈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 이유가 돈 때문인데,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잖아요. 애들이 도박으로 돈을 배우는 거예요.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민씨는 진로를 고민한다. 도박 중독의 뿌리인 돈 욕심을 극복하려 한다. “돈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물질적인 것을 좀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남들보다 아끼고 살면 되지, 허황한 꿈은 꾸지 말자. 평범하게 욕심 없이 살자.” 그는 이런 다짐을 다시 새기면서 인터뷰에 나섰다고 말했다. 젊은 나이에 돈과 물질의 허황함을 깨닫고, 도박에서 벗어나려는 그는 도인이 되려는 것 같기도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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