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배송, 어떻게 가능할까…AI로 권역 최적화 등 저마다 노하우
너도나도 ‘총알 배송’ 쿠팡 따라가는 그들 [스페셜리포트]
소비자 입장에서야 ‘빠른 배송’은 당연히 만족스럽다. 문제는 속도를 끌어올려야 할 기업에 있다. 기존 택배 업계가 당일 배송을 못했던 이유가 다 있다.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 어떻게 제품 배송 시간을 줄이느냐. 둘째, 기사에게 줘야 할 비싼 배송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다.
대형 택배사는 배송 시간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존 택배 업계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을 채용했다. 주문이 들어온 모든 상품을 ‘허브 터미널’에 모았다가 다시 전국 각지 택배 대리점으로 뿌리는 형태다.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당일 배송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판매자부터 구매자까지, 상품이 배송되는 경로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판매자 → 택배 대리점 → 서브 터미널 → 허브 터미널 → 서브 터미널 → 택배 대리점 → 구매자 순이다. 각 대리점과 터미널에서는 지역별로 상품 분류 과정을 거치는데 여기 걸리는 시간이 최소 2시간씩이다. 3~4번 분류 소요 시간과 터미널 사이 이동 시간만 더해도 10시간은 족히 필요하다. 주문량이 갑자기 늘어날 때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분류 작업이 지체되는 데다, 배달 기사가 하루 처리 가능한 건수를 초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배송이 다음 날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이륜차에 기반한 ‘퀵서비스’ 업계는 비용 면에서 불가능하다. 라이더 입장에서는 단건 배송이 대부분인 탓에 하루에 많은 배송을 처리하기 어렵다. 수입을 위해서는 비싼 배송비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장거리라면 비용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당일 배송을 도입한 회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결법을 찾았다.
쿠팡은 그야말로 ‘자본’으로 해결한 사례다. 전국 각지에 물류센터를 짓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높였다. 현재 쿠팡 풀필먼트센터는 전국 46개, 서브 터미널 형태인 쿠팡캠프는 200여개에 달한다. 상품 대부분이 쿠팡 ‘직매입’이라는 점도 빠른 배송에 유리하다. 미리 사놓은 상품을 각 지역 물류센터에 고루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전진 배치’가 가능하다. ‘판매자 → 대리점 → 서브 터미널 → 허브 터미널’ 같은 과정이 불필요한 셈이다.
쿠팡은 오는 2026년까지 약 3조원을 투자해 전국을 로켓배송 가능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대전, 광주, 울산 등 전국 9개 지역에 추가 물류 인프라를 구축해 1만명 이상을 직고용할 방침이다. 한 물류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배송은 한국에서 ‘쿠팡’만이 가능한 모델이다. 서울에 인접한 비싼 부지에 창고 겸 물류센터를 짓고 주문 즉시 자체 배송 인력으로 구매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며 “현재 쿠팡 국내 택배 점유율이 25% 수준인 덕에 ‘규모의 경제’ 실현도 가능, 물류 비용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네이버는 쿠팡과는 상황이 다르다. 직접 운영하는 물류센터가 없을뿐더러 ‘직매입’ 구조도 아니다. 상품 중개만 담당하기 때문에 상품을 미리 분산·확보해놓고 빠르게 뿌리는 전략이 불가능하다. 네이버는 ‘물류 연합’에서 답을 찾았다.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aver Fullfilment Alliance)’, 이른바 NFA를 통해서다. 물류 경쟁력을 갖춘 여러 기업과 손을 잡고 각지에 최대한 빠른 배송을 진행하는 전략이다. 현재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한진 등 ‘택배 빅2’를 비롯해 품고, 아르고, 파스토, 위킵 등 10여개 물류사 등으로 구성된 NFA와 함께 배송을 진행한다. 파스토, 아르고 등 다수 물류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했고 CJ대한통운과는 지분 맞교환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네이버가 다른 판매자 물량까지 모아 물류사와 계약하기 때문에 훨씬 좋은 조건으로 물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네이버 도착보장 상품’이라는 배지 역시 마케팅 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물류사는 네이버 쇼핑이라는 큰 고객을 갖고 있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윈윈’이다.
CJ대한통운이나 한진은 NFA 소속 스타트업을 비롯해 여러 물류 기업과 협업을 맺고 당일 배송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한진은 품고·아르고·파스토 등 스타트업과 협업해 물류·배송을 위탁한다. ‘품고’는 인공지능(AI)을 통한 주문처리 자동화와 수요 예측에 특화된 기업이다. 네이버는 품고 풀필먼트 서비스와 한진택배의 운송 역량을 더해 주 7일·당일 배송을 올 4분기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르고’는 OMS(주문관리), WMS(창고관리), TMS(운송관리) 시스템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모든 물류센터의 현황을 고려해 주문을 내리고 빠른 출고와 배송까지 담당한다. 양수영 아르고 대표는 “내부 구성원 74% 이상이 개발 인력으로, IT 중심 풀필먼트 서비스에 강점을 보유했다”며 “올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배, 출고 건수가 3배 이상 늘어나는 데 힘입어 최근 기존 2배 규모 물류센터로 확장 이전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브이투브이는 수도권 도심 물류에 특화된 택배 서비스 ‘투데이’를 운영한다. 버스 같은 대중 교통망에서 착안해 ‘대중 물류망’을 설계한 것이 핵심이다. 버스 대신 트럭이 대중 교통망처럼 움직이며 사람 대신 상품을 이동시킨다고 보면 이해가 편하다.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이면 배송 가능하다. 권민구 브이투브이 공동 창업자는 “도심 물류만 빠르게 처리하면 배송 경로가 도시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 좁은 지역에 물동량이 많아 규모의 경제 달성에도 용이, 배송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송 네트워크 없는 자사몰
당일 배송 대행 통해 ‘차별화’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은 ‘자체 브랜드’와 직접 계약을 맺고 배송을 대행해주는 ‘당일 배송 전문 스타트업’도 있다. 각자 저마다 방식으로 배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직계약 덕에 대리점이나 서브 터미널을 거칠 필요가 없어, 6~7시간 정도면 배송이 된다.
‘딜리버스’ 핵심 역량은 ‘상품 분류’다. AI 딥러닝 기반으로 배송 권역을 분류하고 배송 기사 최적 이동 경로를 추천해주는 방식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매일, 하루에 가장 많은 물품을 시간 내 배송할 수 있는 80여개 ‘자체 권역(클러스터)’을 설정한다. 클러스터는 매일 달라진다. 그날그날 들어온 주문 상품 종류와 배송 지역은 물론, 출발지와 목적지 위도·경도, 강우량 같은 기상 데이터, 아파트·빌라 등 건물 타입, 공동 현관 비밀번호 여부 등을 분석해 초 단위로 예정 소요 시간을 짠다.
이렇게 분류된 상품은 ‘박스’에 담겨 딜리버스가 운영하는 각 지역 ‘무인 캠프’로 이동한다. 배송 기사는 무인 캠프에 방문해 자신에게 할당된 유닛 박스를 챙긴 후, 딜리버스 추천 순서에 맞춰 클러스터 내에서 배송하면 된다. 딜리버스는 현재 당일 도착 보장 배송을 하루 평균 10만건 처리한다. 도착 보장률은 99%에 달한다. 김용재 딜리버스 대표는 “그동안 쌓인 수백만 건 배송 데이터에 기반해 매일매일 가장 효율적인 배송 권역을 분류한다. AI가 정해진 시간 내 가장 많은 물품을 배송할 수 있는 조합을 생성해 건당 배송 단가를 낮춘다”며 “뷰티·패션 등 당일 배송을 차별 포인트로 생각하는 자사몰 중심으로 고객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설립한 ‘체인로지스’는 당일 배송 업계에서 가장 긴 업력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당일 배송 서비스 ‘두발히어로’를 운영한다. 지난해 11월 올리브영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면서 ‘오늘드림’ 배송을 담당하고 있다. 컬리나우 배송도 전담하고 있다.
체인로지스가 배송 시간을 줄일 수 있던 비결은 ‘좁은 권역 설정’, 그리고 ‘N차 배송’이다. 체인로지스는 직계약한 배송 기사 담당 권역을 최대한 좁게 설정한다. 해당 기사는 그 권역을 하루 3번 이상 오가는 방식으로 배송한다. 담당 구역을 계속 드나드는 우체국 집배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권역은 좁지만 한 집 건너 인접 배송지를 한 번에 여러 군데 들를 수 있게 설계해 단가를 낮췄다. 대리점 역할을 하는 서비스센터부터 배송 권역까지, 배송 기사가 출퇴근을 여러 번 하다 보니 그때그때 들어온 주문 상품을 빠르게 처리하는 장점도 있다. 체인로지스 당일 도착 성공률은 99.7%, 누적 배송 건수는 1100만건에 달한다. 내년에는 직계약 배송 기사를 현재 450명에서 8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김동현 체인로지스 대표는 “관건은 배송 기사마다 시간당 기대 수입을 올려주면서도 빠르게 많은 상품을 배송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그동안 쌓아온 권역 설정과 N차 배송 운영 노하우가 핵심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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