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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알바생' 황지원 씨의 하루

부산한 일터에서 맞이한 동심
일상을 씩씩하게 맞는 원동력

김윤지 취업준비생

오전 7시, 엄마가 새벽 수영 갈 준비를 요란하게 한다. 아침 댓바람부터 눈이 떠지다니 억울하다. 시간이 남아 전기장판에 등을 노릇노릇 굽는다. 굽기만 하려고 했는데 눈 뜨니 12시다.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입안에 가득한 간장 계란밥을 씹으며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간다. ‘103번 도착 15분 전’ 아오! 내가 걸어서 가는 게 더 빠르겠다. 이어폰을 꺼내 로제의 ‘아파트’를 들으며 카페로 향한다. ‘아파트, 아파트…’ 박자에 맞춰 씩씩하게 걷다 보니 오후 1시50분, 10분 일찍 도착했다. 이건 출근길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워야겠다.

“황지원 씨 오늘도 잘 부탁해.” 눈치 없게 사장님이 10분 일찍 온 나에게 바로 앞치마를 넘겨준다. 애꿎은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미워진다. 오후 2시30분, 우리 카페 위에 자리 잡은 결혼식장에서 하객 손님들이 몰려온다. 아아 석 잔, 뜨아 두 잔, 그리고 유니콘 프라페 한 잔. 모두 ‘아아’나 ‘뜨아’로 통일하면 좋으련만…. 유니콘 프라페를 만들기 위해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형광색 시럽을 꺼낸다.


저 결혼식장에서는 커피가 안 나오나 생각하다 보면 오후 2시50분이다. 20분 동안 한 무리의 물소 떼 같은 손님들을 보내고 나면 다음 식이 끝나는 3시30분까지 한숨 돌릴 수 있다. 구석에 앉아 친구들이 보낸 카톡을 보려는 순간 ‘쿠팡이츠 주문, 쿠팡이츠 주문’이 들려온다. 이상하다. 이 시간에는 배달 주문이 잘 없는데…. 밀려드는 주문에 결국 한 번도 못 앉았다. ‘사장님 대박 터지셨어요. 저는 종아리가 터지고요.’

해가 지면 이제 슬슬 마감을 준비한다. 아니 준비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저녁에도 손님이 많다. 시커먼 정장 차림의 아저씨들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모두 똑같은 질문을 한다. “캐치티니핑 있어요?” 네, 어제도 일곱 마리 팔았고요. 오늘도 다섯 마리 준비돼 있어요. 속으로 대답한다. 말없이 티니핑 모형 인형, 텀블러, 가방을 보여드리니 한아름 안고 모두 사겠다고 한다. “랜덤 모형 인형 1만4900원, 실리콘 가방 2만400원…. 총 7만3800원입니다.” 모두 내 시급보다 높다.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가 핑크색 티니핑 여러 마리를 데려가는 모습이 사뭇 이질적이다.

마감 10분 전, 오후 7시50분, 횡단보도 건너에 어린 여자아이와 그의 아빠로 보이는 아저씨가 서 있다. 아, 불안한데, 여기로 올 것 같은데….

정답!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캐치티니핑 가방 있어요?” 어린 여자아이가 묻는다. “앞에 온 손님이 왕창 사시는 바람에 재고가 없는데…”라고 말을 흐리니 아이가 입을 삐쭉삐쭉 내밀더니 고개를 획 돌리고 ‘뿌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터진 크림빵 같은 얼굴을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아까 그 아저씨한테 가방 하나만 팔걸. “애기야, 이모가 사장님께 가방 물량 늘려달라고 얘기할게”라고 아이를 달래본다. 오늘도 8시 칼퇴근은 글렀다.

커피머신을 청소하고 시럽통을 설거지하고 바닥도 박박 닦으니 8시30분이다. 으, 오늘은 총 40분을 더 일했다. 열심히 일했으니 붕어빵 사 먹을 거야, 말리지 마. 아무도 말리지 않는데 굳은 다짐까지 하고는 경찰서 옆 붕어빵 가게로 빠르게 걸어간다. 팥 두 개, 슈크림 두 개. 품 안에 안으니 속까지 따뜻하다.

흰 봉투에서 한 마리 꺼내 와앙 베어 물며 기력을 보충한다. “붕어는 보양식이니까. 그나저나 사장님께 티니핑 여러 마리 데려오라고 말씀드리려면 내일도 일찍 가야겠네….” 아까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운 아파트를 다시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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