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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하기를 실패하겠다 [.txt]





비상 계엄령 사태로 유독 밤이 길었던 그날,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을 받아 읽었다. ‘정치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파업과 태업을 금한다.’ 원래 검열하고 금지했으면서 새삼스러운 조항에 코웃음이 났지만, 위반할 시 처단하겠다는 마무리에 목구멍이 막혔다. 유독 걸린 구절은 선량한 일반 시민은 보호하겠다는 표현. ‘성품이 어질고 착하다’는 의미의 ‘선량하다’는 문장이 나는 늘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착한 장녀가 되라는 요구를 들으며 자랐다. 주위를 챙기고 배려하는 방식을 배웠다. 나는 선량한가? 대입이 목표여야 하는 청소년의 자리를 벗어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청소년기에 ‘19금’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선량한가? 20대 중반에 동거하던 애인과 계획 없는 임신을 했다. 허름한 병원에서 현금으로 몰래 인공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낙태죄 폐지 시위’에 참여했다. 나는 선량한가? 지하철에서 마땅히 자리를 양보한다. 나는 ‘대중교통’이라면서 어떤 존재를 당연한 듯 배제하는 ‘특권교통’에 반대한다. 장애인의 출근길 지하철 이동권 시위에 찬성한다. 나는 선량한가? 나는 남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성별과 사랑하고 섹스할 수 있다. 1:1 독점이 아닌, 비독점적인 관계를 지향한다. 그 내용을 책으로 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에는 하루 만에 악플 4652개가 달렸다. 성희롱을 단 악플범은 벌금형을 받았다. 나는 선량한가? 세상에 남자와 여자만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딸이네요~ 축하해요” 같은 인사말은 아이에게 무례한 짓이다. 아이의 성별은 아이가 자라며 정할 권리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나는 선량한가? 나는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는 친구가 신경 쓰인다. 장애인 화장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공간 때문에 외출할 때면 물을 마시지 않는 친구의 상황과 성별 이분법으로 나눈 화장실에서 망설이며 얼마간의 시간을 써야 하는 트랜스젠더 친구의 시간에 분노한다. 나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분노한다. 바로 집 옆에 있는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빠르고 빠른’ 로켓배송 슬로건에 쓰러져가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내 편리와 쉽게 바꿀 수 없다. 나는 선량한가? 나는 비 오는 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 모든 선택을 단지 개인의 죄책감과 책임감만으로 몰아가는 상황에도 수긍할 수 없다. 시스템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구조’에 대해서 따지고 싶다. 나는 선량한가? 나는 내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특히 요즘에는 경기도 교육청에 의해 ‘포괄적인 성교육’과 관련한 모든 책을 읽힐 권리를 빼앗길 청소년들에게 편지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당신을 통제하는 것들을 벗어나라고, 망한 섹스와 별로인 연애와 혼란스러운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과 우연으로 가득할 여러 가능성을 더 읽고 겪어도 괜찮다고 쓴다. 오히려 그게 진실에 가깝다고 쓴다. 당신도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도 괜찮다고 쓴다. 나는 선량한가? 나는 선량하길 바라는가? 살아가는 것만으로 어느 시스템에 맞물린 우리. 착하고 선명한 이야기보다 불확실한 이야기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 우리는 계속 실패할 거다. 선량하길 실패할 것이다.



홍승은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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