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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배달? 로켓배송 중독된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소셜 코리아]

[소셜 코리아] 액화노동 현실 고민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따뜻한 학자가 반박하는 비정한 자본논리

[천현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어울리지 않는 직함을 달고 다닌 적 있었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이하 청조위) 민간위원이다. 위원회 발족과 함께 임명된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합류했기에 부끄럽게도 별다른 활동은 못 했다. 그런데 일은 적게 했어도 경력은 남더라. 지금도 써넣을 글자가 한없이 궁핍한 이력서에 청조위 경력을 요긴하게 써먹는 중이다.

청조위는 청년기본법에 따라 만들어진 국무조정실 소속 조직이다. 청년기본법에서 정한 대한민국 청년 기준은 19세 이상 34세 이하 시민이다. 90년생인 나는 아슬아슬하게 당사자에 속하므로 우는 소리 좀 해보려고 한다.

이놈의 나라는 청년이 살기 너무 힘들다. 이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어렵다는 비유인 동시에 '정말로 생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20대 사망원인 50.6%는 자살이다(통계청, 2023). 가장 자유롭고 또 왕성하게 꿈을 펼쳐야 할 시기에 혼자 세상을 뜨는 이유가 뭘까. 아마 수많은 공범이 있을 테지만, 나더러 가장 죄질 나쁜 범인 하나만 지목하라면 단연 노동 양극화를 꼽고 싶다.

대한민국은 고작 스무 살 언저리에 대학입시라는 인생의 가장 큰 분기점을 지나야 한다. 여기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매우 불리한 입지에서 남은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한국에선 고임금, 고용 안정, 알짜배기 경력을 두루 갖춘 15%의 좋은 직장에 안착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거의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좋은 직장에 입사하는 조건 중엔 학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어릴 적부터 부족한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과 서열 다툼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굉장히 잔혹한 시스템임에도 사회는 이 체계를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어쨌든 시험이란 과정 자체는 투명하고 단순하기에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여기에 공정과 노력으로 포장한 논리가 더해지면서 수능 한탕주의는 더더욱 견고해진다. 청년들은 경쟁에서 뒤떨어질 것을 두려워해도 내색할 수 없다. 월급이 적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땀 흘리며 일하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이토록 부당한 사회를 오롯이 내 몸 하나만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세상, 대체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고 어떻게 바꿔나가야만 할까?

안전장치 흘러내린 '액화노동'

지난 8월 18일 새벽 쿠팡 일용직이었던 고 김명규(48)씨가 일하다 사망한 경기도 시흥캠프의 9월 10일 밤 모습. 심야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 김성욱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이승윤 교수의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이 의문을 깊게 고민한 흔적이다. 저자는 불안정노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다. 그 전문성은 노동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행동력에서 나온다. 이는 단어 몇 개로 가볍게 얘기할 만큼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일단 불안정노동 종사자들은 만나기부터가 어렵다. 그들이 얼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정치인이나 학자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에 아무 변화도 없거니와 회사나 고용주에게 '별난 인간'으로 찍힐 위험까지 도사린다. 기껏 만나서 얘기 나눠본들 노동자의 거칠고 진부한 언어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뽑아내기란 무척 힘들다. 절대다수의 노동자는 '나'와 '일'에만 집중하기 일쑤라 "적은 돈을 받고 힘겹게 일한다" 이상의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을 만나 비슷한 내용의 인터뷰 속에서 핵심을 찾고 연결해 논리를 구성하는 일은 지적 노동 이전에 '노가다'다. 다들 싫어할 법한 이 일을 해내는 사람이 이 교수다.

그가 보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2023년 영미권에 출간한 책 제목 <불안정노동의 다양성 : 액화노동과 한국 복지국가의 실패한 노동자 보호>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액화노동이란 그간 '노동'을 이루던 구성요소, 즉 4대 보험,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주휴수당 및 연차휴가, 야근수당이나 잔업·특근 수당 등 '고체'였던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이 흘러내려 '액화'되어 버린 노동 전반을 뜻한다. 종사자들이 무늬만 자영업자 신분인 화물차 운전이나, 플랫폼 노동으로 분류되는 배달 혹은 물류센터 노동이 대표적이다. 언뜻 보면 사용자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일 같지만, 파고들면 노동자에게 불리한 요소가 대부분 강요되는 노동이다.

책의 맨 첫 장은 쿠팡 새벽 배송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다룬다. 쿠팡, 배달의민족이 대표하는 플랫폼 노동은 첨단 기술을 동원한다. 하지만 노동자를 위해 동원하지 않는다. 대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실적을 평가하며, 더 빨리 일하길 재촉하는 용도로 동원한다. 건설 막노동 용어로 '야리끼리'란 단어가 있다. 조기 퇴근하기 위해 일을 몰아치는 행위를 뜻한다. 쿠팡 배송 노동자는 매 순간 '야리끼리'하듯 일하면서도 정작 노동자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실로 비인간적인 이 노동은 단지 수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되고 있다. 주문한 물건이 자고 일어나면 현관 앞에 턱 놓여있는 마법에 중독된 이용자는 좀처럼 쿠팡 로켓배송을 거부하지 못한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소비를 이렇게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배달하는 사람들 돈 잘 번다. 우리가 로켓배송 안 하면 그 사람들 일자리 잃지 않느냐?" 이윤에만 집착하는 기업과 노동자에게 좀처럼 공감하지 않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액화노동 종사자들의 목소리는 쉽게 묻혀버리고 만다.

먹고살기 바쁜 청년은 빠진 청년담론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이승윤 교수의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 문학동네

액화노동은 중노동 대비 저임금임에도 고용이 불안한, 질적으로 형편없는 일자리가 다수다. 심지어 이런 나쁜 노동 조건 외에도 문제점이 또 있다. 산재다. 사망사고나 중상은 가끔 뉴스에 나오기라도 하지 점잖게 직업병, 다른 말로 골병인 직업성 만성질환 산재는 아직 본격 논의가 되고 있지 않다. 기업도 굳이 추가 비용을 들일 생각이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기껏해야 1년에 30분도 안 걸려 끝나는 허술한 건강검진, 하루에 준비운동 몇 분(그조차 대부분 노동시간에 포함 안 시키는) 까딱거리는 수준에 그친다.

본문에서도 언급하는 급식 노동자들은 이 만성질환을 달고 산다. 애초에 10년, 20년 동안 1인당 100명 넘는 학생의 밥을 지어왔다면 목, 허리, 어깨, 팔꿈치, 손목이 멀쩡할 리가 없다. 지금은 정년 퇴임한 내 선배 용접 노동자들도 대부분 폐질환을 달고 살았다.

노후를 아프게 보내야 하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비참할 노릇인데, 하필 대한민국은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나라다. 더군다나 액화노동의 특성상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국민연금조차 가입이 안 되어 있는 노동자가 많다. 가난해서 제대로 치료도 못 한 채 병을 방치하고 사는 노인이 얼마나 많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몸이 안 아플 수가 없을 지경으로 부려 먹히지만 그로 인해 얻은 병마는 오롯이 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과거이자 현주소다.

2021년 무렵 재유행했던 청년담론엔 노동시장 경쟁에서 밀리면 누구라도 이런 액화노동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뒷배경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 또한 당시 코로나로 권고사직 당한 뒤 직장을 계속 옮겨 다녔던 액화노동 종사자로서 누군가 이 현실을 이야기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청년담론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자리를 두고 "어떤 경쟁 방식이 더 옳은가"로 흘러갔다. 먹고살기 바쁜 청년의 사정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청년이란 상징성마저 번듯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몫이었다. 과도한 스펙 경쟁을 비판했던 청년들의 유행어 '노오력'은 힘을 잃었고, 사회가 부조리한 탓에 발생하는 현상의 책임을 몽땅 개인 몫으로 돌리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이 유행어로 떠올랐다.

미디어로만 접했던 청년담론의 괴리를 현실에서 경험했던 적도 있었다. 제4차 청조위 회의 때였다. 총리와 장관들이 앉은 자리에서 모두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지방의 청년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대책을 말했다.

첫째는 임금 보전. 공장 다니는 청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을 받기에 오래 일할 메리트를 못 느낀다. 이들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인을 만들어 달라. 둘째는 직업 교육. '물경력'이 아니라 진짜 '숙련'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교육시설과 인력에 투자해달라. 이는 단지 노동자나 지역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처라고 생각했다.

내 다음 발언 차례였던 한 위원은 나와 비슷한 비수도권 거주 남성 청년이었다. 하지만 주장은 나와 거의 정반대였다. 요약하자면 "인재가 수도권으로 다 빠져나가는 마당에 최저임금까지 가파르게 올라 회사 운영이 힘드니 주휴수당이라도 폐지해달라"는 거였다. 대기업 하청 공장 사장님들에게서 많이 듣던 주장이었다.

문제의식 발견, 증명, 해결책까지

‘비정규직 격차 확대, 학교급식실 파탄 책임 윤석열 정부 퇴진 촉구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집단 삭발식’이 11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앞에서 민주노총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세대, 성별, 지역이 엇비슷해도 계급 하나가 다르면 전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물론 창업이 지역 활성화의 핵심 키워드임을 안다. 최저임금 급상승에 골머리 앓는 사업가의 고충 또한 모르지 않는다. 다만 대한민국의 사회 안전망이 형편없다는 사실, 그래서 최저임금이 그 역할까지 도맡아야 하는 현실을 간과한 발언처럼 느껴졌다.

세대와 계급이 어긋난 이 장면은 당시 청조위 부위원장이었던 저자에게도 퍽 인상 깊었던 걸까. 그 잠깐의 장면이 책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자의 저력은 이 순간 느꼈던 생각을 그저 감상평에 머물지 않고 학술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청년들의 노동시장은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으며, 나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 또한 원활하지 않다"는 사실을 논문 '디지털 전환기 한국 청년 노동시장의 계층화'(2022)에서 논증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이처럼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증명하며, 나아가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사회복지학자 이승윤의 연구 궤적이다. 약자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게으른 기득권이 속 편히 쏟아내는 헛소리를 향한 비판, 동시에 그 기득권에 자신이 편입되지 않으려 끊임없이 경계하는 학자로서의 미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쿠팡 배달, 학교 급식, 현대중공업 하청,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러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거쳐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청년담론을 회고하고 연구자로서 성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246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안에 담긴 고민의 밀도는 숨 막힐 정도다. 가슴 따뜻한 학자가 비정한 자본논리를 반론하려 집요하게 노력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상이 무시하고, 임금은 적은데, 쉴 시간도 없이 부려 먹히고, 그러다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자가 너무도 많은 이 사회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천현우 / 용접공
ⓒ 천현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천현우는 경남의 여러 제조업체를 돌며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 신분으로 정부에 지역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주간경향>에 지방 청년의 삶과 제조업 경험을 바탕으로 쓴 칼럼을 모아 단행본 <쇳밥일지>를 출간했으며, 현재 <조선일보>에 정기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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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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